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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성범죄 느는데 대책은 안 보여

입력
2016.05.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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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성ㆍ죄의식 없는 범행이 태반

지적 능력 낮아 방어권 행사 못해

피해자 무리한 요구 감수하기도

정부, 실태 파악ㆍ관리체계도 없어

교육 매뉴얼ㆍ조력제도 강화 필요

지적장애 2급인 A(19)군은 지난해 5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8세 여아의 상반신을 만졌다가 성추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서로 끌려 온 그는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 “그냥 궁금해서 그랬다”고 답했다고 한다. A군의 지능은 5,6세 수준. 부모가 조사에 동석했지만 정상적인 의사소통은 힘들었다. 주변 사람을 함부로 만지는 것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피해 사실과 증거가 있는 엄연한 성범죄였다. 피해 아동의 부모도 처벌 의사가 강했다. 경찰은 결국 A군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발달장애인(지적장애ㆍ자폐성장애)에 대한 성윤리 교육이 부실해 성범죄가 잇따르지만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수사 과정에선 상대적으로 낮은 발달장애인의 지적 능력 탓에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할 때가 많은 만큼 조력 제도 강화도 요구되는 상황이다.

가장 큰 쟁점은 발달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다. 이들의 지적 능력은 등급에 따라 2,3세 수준에 그친다. 반면 신체발달 정도와 성적욕구는 비장애인과 차이가 없어 언제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성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체감하는 피해 정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A군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 관계자는 1일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혐의로 입건되는 발달장애인을 자주 접하지만 고의성이 없거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사정이 안타깝기는 해도 혐의가 특정되기 때문에 통상적인 법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발달장애인이 피의자 신분으로 바뀐 이후 발생한다. 영화 ‘도가니’ 등의 흥행으로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장치가 확충된 데 반해 가해자는 여전히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변론해야 한다. ‘의사소통ㆍ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은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 장애인차별법(제26조)도 어디까지나 피해자 중심의 지원이 원칙이다. 수사기관은 진술 능력이 부족한 발달장애인 피의자보다 피해자의 진술을 중요시 할 수밖에 없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성범죄 가해자를 왜 보호하느냐’는 사회적 통념이 공고한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피의자를 구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발달장애인은 성범죄 피해자의 무리한 요구마저 감수하기도 한다. 지적장애 2급 B(24)씨는 지난해 5월 버스 옆 자리에 앉은 20대 여성의 허벅지를 손으로 만져 성추행 혐의로 입건됐다. B씨를 지원했던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B씨는 진술조력을 전혀 받지 못해 범행 동기를 소명할 수 없었다”며 “늘 내리던 버스 정류장에 피해자와 함께 내렸는데 ‘추가 범행을 하러 쫓아왔다’는 오해를 사고, 장애인이라 더 기분 나쁘다는 말까지 들으며 합의금 400만원을 요구 받았다”고 토로했다.

근본 대책은 어릴 때부터 꾸준한 교육을 통해 성범죄를 미리 예방하는 일이다. 그러나 발달장애 청소년을 상대로 한 정부 차원의 성범죄 방지 대책은 여성가족부가 2012년부터 진행해 온 ‘장애아동ㆍ청소년 성인권교육’이 유일하다. 그나마 최근 2년 간 해당 교육을 이수한 장애 청소년은 1,500명.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14~19세 전체 발달장애인(3만2,228명ㆍ2014년 기준)의 4.7% 정도에 그쳤다. 교육은 물론 발달장애인의 성범죄 실태 파악 및 관리 체계도 없는 상태다. 한소미 서울시립중랑청소년성문화센터 팀장은 “1년에 10회 정도 기초적인 성 인식만 주입시키는 교육 방식으로는 사회화 과정이 더딘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범죄 유무를 판단할 수 없다”며 “일상에서 올바른 성윤리를 배울 수 있도록 장애청소년과 보호자를 위한 교육 매뉴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 성교육의 경우 아직까지 개별 장애 유형까지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며 “부처간 협업을 거쳐 성인권교육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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