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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어버이연합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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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과를 “투표 혁명”까지 운운하며 반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오히려 걱정스럽게 봐야 할 대목이 있지 않나 조심스럽다. 오만한 정권 심판이라는 유권자들의 분노가 표출된 건 맞지만 그래서 뭘 어떻게 하고 싶은가 하는 표심의 방향은 다소 종잡기 힘들었다. 지역 구도에 균열이 생긴 것을 목도했지만 대세인지 모르겠다. 전라도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한 이유도 몇몇 옛 민주당 간판 의원들의 입당 효과를 빼고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낙승을 그 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라고 보기도 힘들다.
이보다 더 우려할 것은 의석 확보에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기독자유당 등 기독교를 앞세워 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극우파 종교 정당의 놀랄 만한 득표율이었다. 기독자유당은 이번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2.63%를 기록했다. 비슷한 성향의 기독민주당은 0.54%였다. 두 당이 얻은 표를 합하면 75만 표가 넘는다.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녹색당, 노동당, 민중연합당이 얻은 전체 표의 두 배 이상이다.
선거 기간 내가 사는 지역에 붙은 출마자 포스터에서 ‘종북, 이슬람, 동성애자, 19대 국회 척결’이라는 문구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앞서 언급한 정당과는 다르지만 핵심 구호는 비슷한 다른 기독교 정당의 포스터였다. 비례 의석을 대폭 늘려 소선거구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믿어온 나로서도 그렇게 되면 이 같은 극우 종교 정당들이 원내 진입하겠다고 생각하니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종북 척결’이라는 이념적인 주의주장을 적극적으로 펴는 어버이연합의 경우도 그 동안 행태를 보노라면 이 같은 차별ㆍ혐오 선동 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광화문 세월호 단식 농성장 앞에서 벌인 치킨ㆍ자장면 먹기 퍼포먼스는 이들이 소수자 차별을 선동하는 세력과 어떤 면에서 정서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말해준다. 서울시에 몰려가 “시장 나오라”고 큰소리치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반대 현장에 나타나 “그만 하라”는 것은, 자신들은 그 모든 것을 종북 세력의 소행이라고 믿는지 몰라도, 상식적으로 이념과 무관한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넓은 오지랖일 뿐이다. 알려진 대로 이 과정에서 돈이 큰 역할을 했다면 서글프다고 밖에 더 할 말도 없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나 특정한 사안에 대해 문제 있는 생각을 갖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차별이나 혐오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문제의 경우 이를 너그럽게 포용하는 문화를 가진 유럽 국가들에서도 10% 남짓 반대 인구가 있다. 그들 역시 단체든 정당이든 자신들의 주장을 확산시키려고 애쓴다. 그래서 설사 기독자유당이 원내에 의석을 확보하더라도 그것은 분노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다. 세상은 원래 그랬고 사회가 바뀌면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달라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문제는 어버이연합 자체가 아니다. 전경련이 어버이연합 관련 재단에 여러 차례 수억 원의 돈을 댄 것이 사실이라면, 어버이연합 집회에 청와대 인사가 개입(설사 개인적 일탈이라 하더라도)한 것이 맞다면 우리는 이 사실에 절망해야 한다. 과문하지만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옥죄기 위해 정치권력이나 관련 단체를 이용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기업인 단체가 직접 이익도 없는 지극히 이념적인 단체에 돈을 대 그 단체의 혐오 행위를 사실상 방조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회 갈등을 무마해도 모자랄 정치권력이, 그것도 최상층부가 자신들이 나서지 않았으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을 이념 갈등을 도리어 부추기는 행위 역시 용서하기 어렵다. 한국은 서로간의 신뢰가 부족하고 툭하면 다투는 갈등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라고 한다. 문득 그 갈등이 돈과 권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김범수 문화부장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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