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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레드 카펫’ 다시 밟는 박찬욱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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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억 대작 ‘아가씨’로 복귀
내달 열리는 칸 경쟁부문에 진출
예술영화 감독으로 인식되며
국제 지명도 높고 상업성도 겸비
“흥행 상관없는 독보적 존재”
‘친절한 금자씨’ 이후 부진했지만
브랜드 가치 높아 투자 이끌어내
해외 판매 등 실패 가능성 적어
“내년까지는 기다려야겠네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초청작이 발표될 때쯤 한 영화인이 던진 말이다. 박찬욱 감독이 신작을 내놓는 2016년은 돼야 한국영화의 경쟁부문 진출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자조 섞인 발언이었다.
한국영화는 2012년 ‘돈의 맛’(감독 임상수)과 ‘다른 나라에서’(감독 홍상수)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나란히 진출한 뒤 칸 경쟁부문 레드 카펫을 밟지 못했다. 영화계에선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영화제 중의 영화제로 꼽히는 칸영화제의 꽃이라 할 경쟁부문에 진출작을 내지 못한 데서 한국영화의 어두운 미래를 점쳤다. 박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내달 열릴 칸 경쟁부문에 초대되면서 충무로는 4년 만에 체면치레를 하게 됐다.
130억원 대작으로 화려한 충무로 복귀
영화제에서의 활약상으로만 따지면 박 감독은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감독 등과 한 묶음으로 분류될 만하다. 박 감독은 칸 등 세계 유수 영화제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는 몇 안 되는 한국 감독이다. 박 감독은 2004년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이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 ‘박쥐’로 2009년 심사위원상을 각각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밀양’으로 전도연 최우수여자배우상과 ‘시’로 각본상 수상)과 함께 칸에서 가장 많은 성취를 이뤄낸 국내 감독이다.
대중적인 인지도에서는 봉준호(‘설국열차’) 감독과 최동훈(‘암살’), 류승완(‘베테랑’) 감독 쪽에 가깝다. 하지만 넓은 국내팬층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봉준호 감독과 최동훈, 류승완 감독도 칸 경쟁부문에 초대되진 못했다. 박 감독은 예술영화 감독의 외형을 띠면서도 생산과 소비 방식은 상업영화 감독의 전형을 따라가는 셈이다. 박 감독의 신작 ‘아가씨’는 그의 복합적인 면모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아가씨’의 순수 제작비는 130억원이다. 개봉 뒤 마케팅비 등을 포함하면 총제작비 15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막대한 재산을 물려 받은 귀족 아가씨(김민희)와 그의 후견인인 이모부(조진웅), 아가씨의 유산을 노리는 사기꾼 백작(하정우), 백작과 손잡고 아가씨에게 다가서는 하녀(김태리)의 사연을 그린다.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세트와 의상 등에 공을 들이며 제작비가 높아졌다.
100억대 영화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불린다. ‘암살’이나 ‘국제시장’처럼 크게 터트려 크게 챙기는 ‘규모의 경제’ 논리가 적용된다.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감독이 2010년대 들어 투자 받기에 애로를 겪거나 저예산영화에 매진하는 것과 비교된다.
박 감독 전작들의 흥행 성적이 빼어난 것도 아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580만 관객을 모았으나 ‘친절한 금자씨’ 이후 흥행 수치는 내림세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할리우드에서 만든 ‘스토커’는 100만 관객을 넘지 못했다. ‘박쥐’는 223만7,271명으로 손익분기점에 겨우 이르렀다. 다른 감독들에게는 엄격한 시장의 법칙이 박 감독에게는 헐겁게 적용되는 셈이다.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독보적 존재”
‘아가씨’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완성도 높고 상업성 짙은 시나리오”를 투자의 이유로 꼽았다. 박 감독의 인지도와 배우들의 면면을 감안했을 때 상업적 승산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하정우 김민희 조진웅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등 대중적인 외형이어서 흥행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가씨’의 극장 손익분기점은 500만명 가량이다.
해외에서 박 감독의 힘을 찾는 분석도 있다. ‘아가씨’는 지난 2월 기준 이미 116개국에 수출됐다. ‘올드보이’ 등으로 해외 예술영화 팬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감독의 신작이라 매수가 몰렸다. 윤인호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한국영화는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100만달러(약 11억5,000만원)를 넘으면 엄청난 성공으로 간주한다”며 “‘아가씨’의 해외 수익은 이미 100만달러를 훌쩍 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서 아무리 인기있다 해도 100억원대 영화의 상업적 성공은 국내 시장에 달려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아가씨’로 거둘 수 있는 해외 수익은 잘해야 20억원 남짓일 것”이라며 “해외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논리면 김기덕 홍상수 감독 영화에도 많은 돈이 투자돼야 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박찬욱이라는 ‘브랜드’가 지닌 가치는 단순히 손익분기점이라는 시장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는 “상업적인 영화를 주로 내놓는 CJ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선 박 감독을 통해 돈만 좇는 회사가 아니라는 인식을 국내외에 심어 줄 수 있다”며 “유ㆍ무형의 이익을 모두 따져봤을 때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감독은 국내 흥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라고 덧붙였다.
박 감독이 오랜 시간 쌓아온 이미지도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로 대중들에게 처음 인식돼 독특한 영화세계를 지녔는데도 상업영화 감독으로 여겨지곤 해 김기덕 홍상수 감독과 달리 일반 관객에게도 마케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 때도 있지만 대중과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도 박 감독만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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