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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상선 빅딜, 지금 당장은 난항… 결국엔 정부가 키 쥘듯

입력
2016.04.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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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차입금은 일부에 불과

공모채 보유자들 이의신청 땐 채무조정 비용만 1조원 전망

주주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땐 수천억 자금 필요… 배임 위험도

“통합 비용보다 이익 더 크면 정부 나서 양대 상선 합칠 것”

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 돌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두 국적선사간 통합이 유력한 구조조정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두 회사의 인수합병(M&A)을 시도할 경우 채권자 보호에 드는 비용만 조 단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현실적 난관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국적선사 두 곳 모두를 지키기는 어렵고 한 곳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정부 내에서 힘을 얻을 경우 정부가 재정 투입을 통한 통합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채권단 관계자는 24일 “비용 문제를 감안하면 양대 해운사 빅딜은 현 상황에선 쉽지 않은 얘기”라고 말했다. M&A 추진 시 채권자 보호에 들어가는 비용이 두 회사의 가치를 웃돌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진해운의 경우 총 금융부채 5조6,219억원 가운데 금융권 차입금은 7,000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공ㆍ사모채가 1조5,000억원, 매출채권 등 자산유동화 규모가 2,000억원, 선박금융 등이 3조2,000억원 등이다. 현대상선도 총 4조8,335억원의 금융채무가 은행권 차입금(1조1,000억원), 공ㆍ사모채(1조9,000억원), 선박금융(1조9,000억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현행 상법의 채권자 보호절차에 따르면 공모채를 보유한 사채권자가 합병 이의 신청을 제출할 경우 채권을 100% 변제하거나, 채권에 상당하는 규모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합병 이의신청은 사채권자들이 채권을 손실 없이 상환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의 신청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각각 공모사채가 각각 8,000억원, 4,500억원에 달한다. 채무조정에 성공해 이중 일부를 주식으로 전환한다 해도 남은 공모사채 규모가 최대 1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게 채권단의 관측이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시가총액 합계(22일 기준 1조979억원)와 거의 맞먹는 규모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합병 추진을 위해서는 채권자뿐 아니라 주주들에게 치러야 하는 비용도 적지 않다. 합병 의결에 반대해 일부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 카드를 사용할 경우 치러야 할 비용도 족히 수천억원은 달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향후 두 회사의 대주주가 될 은행 채권단으로선 이런 손실을 감수하고 합병 결정을 내렸을 때 배임 책임이라는 걸림돌이 생길 수도 있다.

결국 두 국적선사의 합병은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두 회사 통합에 따른 이익이 이런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된다면 정부가 직접 재정을 투입해 양대 선사를 사들여 합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내에서도 국제 교역량 감소추세 등을 감안하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두 곳 모두를 살리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의 합종연횡이 급격히 이뤄지는 현 상황에서 국내 양대 해운사가 새로 형성되는 동맹 가입 타이밍을 놓치면 회생의 의미가 사라진다는 점”이라면서 “두 곳 모두 각각 구조조정을 통한 덩치 줄이기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통합을 통해 그나마 덩치를 키우는 것이 더 큰 해운동맹 가입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정부에서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가운데 용선료 협상 결과 등에 따라 회생 가망이 더 큰 곳이 합병의 주체가 되고, 나머지 한 곳은 회생 가능성이 높은 곳에 흡수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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