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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의사가 본 태양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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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장안의 화제 속에 종영되었다. 나는 왠지 오글거린다는 인상이 있어 평소에 한국드라마를 잘 보지 않지만, 워낙 주변에서 이 드라마에 관한 얘기가 많고 언론에서도 화제이기에 몇 편을 보았다. 나에겐 제법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고나 할까.
각설하고 이 드라마는 의사의 눈으로 볼 때 아주 끔찍한 의학적 고증으로 가득 차 있다. 총탄이 배에 들어갔다고 그 자리에서 후비고(꼭 수술실에서 개복해야 한다), 수액 주사를 맞고 있는 환자에게 굳이 진통제를 근육주사로 놓고(편하게 수액 맞은 자리에 놓으면 된다), 난민 아이들이 홍역이 의심된다고 기지로 데려와 피를 뽑아 검사한다(홍역은 문명사회에서도 대부분 증상으로만 진단하고, 자가 격리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볼 만 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를 삼킨 환자의 엑스레이에 다이아몬드가 잔뜩 찍혀 나오자 나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다이아몬드는 엑스레이에서 투명하게 찍혀 나온다. 그러니 이 환자의 복부 엑스레이는 정상에 가까워야 한다. 하지만, 극중 의사가 들고 온 필름은 하얀 다이아몬드 실루엣이 뚜렷하게 복강에 고여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강철 다이아몬드 사진이라고 할까. 게다가 다이아몬드의 위치도 장 안에 있지 않고, 골반 한 쪽에 모여 있었다. 이는 다이아몬드가 장을 찢고 전부 일렬로 빠져 나와야 하는 일인데, 의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이 드라마는 의학적 고증의 무풍지대였다.
그렇다고 나는 이 드라마에 의학 지식을 들이밀 생각은 더 이상 없다. 군이나 기타 분야에서도 이 드라마에 대한 원성은 자자하니까. 내가 하려는 얘기는 그게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 드라마를 아주 잘 보았다.
이 드라마는 정해진 시간 안에 극적인 이야기를 톱니바퀴처럼 효율적으로 배치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을 극단적으로 실현한다. 어차피 주제는 몇 개의 멜로라인과 우여곡절 속에 벌어지는 클라이맥스, 그리고 그것을 주인공이 헤쳐 나왔을 때의 카타르시스다. 드라마는 이 욕망을 십분 충족시키기 위해 현실이나 고증은 과감히 무시하고,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서서 그들이 보고 싶은 장면이라면 무엇이든 보여준다.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다이아몬드는 안 찍혔지만 필름을 들고 와서 정황상 의심 가능할 수 있다고 망설이는 장면이 아니다. 대중과 TV 안에는 직관적인 세상이 있을 뿐 아무도 그것이 현실적인 경계에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클리셰’란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재료다. 총탄은 즉시 헤집어 뽑아야 하고, 엑스레이에는 분명히 다이아몬드가 보여야 한다. 적어도 대중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시공을 구현해야 한다.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펼쳐낸, 물리적으로 뒤죽박죽인 이 공간에서, 이야기는 날개가 돋아 시청자의 눈동자를 팽팽 돌린다. 여주인공은 매회 추락하고, 납치당하고, 지뢰밭에 들어간다. 지진도 나고, 적군도 쳐들어 오고, 전염병도 돈다. 이 장치로 공고해지는 것은 주어진 육십 분에도 몇 번씩 멜로적 클라이맥스를 만들 수 있는 공간적 배경과, 이에 따른 시각적 구현이다. 그 와중에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사는 위트나 박진감에 있어 어찌나 흥미롭고 기발한지.
결과적으로 이 세계에선 소설적인 장면에서도 쉽게 넘보기 힘든 명랑함이 가득하다. 이게 의도라면 현재까지 숱하게 거론되는 이 드라마의 고증상 오류는 전부 무의미한 이야기가 된다. 이 드라마가 주장하는 바는 되려 그들이 창조한 다른 세계에서 펼쳐지는 멜로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이 통속 드라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의 현재 주소를 보았다. 이것이 내가 드라마를 보지 않는 동안 고심해져 만들어져 온 작품 세계와 작화 방법이었고, 결국 온 세계로 인기리에 퍼져나갈 정도로 장르화된 하나의 현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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