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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장애인 따라와 놀랐다고 아이 심리치료비 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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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애인 40여명이 모여 세차, 목공, 우편대행, 기계 1차 조립 등의 일을 맡아 돈벌이를 하는 서울의 한 장애인보호작업장은 1월 이웃의 한 주민에게 100만원이 넘는 돈을 물어주어야 했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A(20대ㆍ지적장애 2급)씨가 피아노 소리를 듣고 피아노학원으로 와 문을 빼꼼 열었다가 피아노를 치던 B(초등 1학년)양을 놀라게 했다는 이유였다. B양의 어머니는 “몸집 큰 장애인이 우리 애를 쳐다보고 따라와서 아이가 놀라고 대인기피증이 생겨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다”며 방과 후 아이 돌봄비 110만원과 6개월간의 심리치료비를 요구했다.
작업장 측은 난감했다. B양을 따라간 것이 A씨를 비롯해 키 180㎝에 100㎏이 넘는, 체격 좋은 장애인 3~4명으로 추측만 할 뿐 정확히 누구인지, B양 어머니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B양 어머니는 구청에 민원을 내고 학부모들과 함께 작업장을 찾았다. 이들은 “장애인들이 버스 안에서 소란을 피우고 햄버거 가게에서 다른 사람의 음식을 뺏어먹어 피해를 봤다”며 “장애인들이 업무시간에 작업장 밖으로 못 나오게 통제해달라”고 요구했다.
작업장 측은 장애인시설에 대한 혐오와 반대가 번질까 우려돼 어떻게든 합의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100만원 넘는 돈을 물어줄 수 있는 장애인은 없었다. 결국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부모들이 십시일반으로 110만원을 모아 B양 측에 건넸다. 6개월 간의 심리치료비는 진단서나 소견서를 가져오면 주기로 합의했다.
‘장애인의 날’이 올해로 35주년을 맞았지만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도입됐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은 편협하기만 하다.
장애인이 거리를 다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전혀 없다. A씨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아 B양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없다.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지적장애 등 발달장애 특성상 단순한 호기심으로 따라가거나 쳐다볼 수 있으나 이를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고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행위나 괴롭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활동권을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저촉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정기관도 장애인시설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면 장애인시설을 보호하기는커녕 책임을 돌리는 데 급급하다. 장애인시설 관련 민원을 접수한 서울의 한 구청은 시설 측에 “민원인과 원활하게 마무리하라. 해결되지 않으면 시설에 행정경고까지 내릴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구청이 지급하는 보조금이 아쉬운 장애인시설은 눈치만 볼 뿐이다. 한 장애인시설 관계자는 “보조금을 주는 감독기관에 대항해봤자 결국 시설만 피해를 본다”며 한탄했다.
전문가들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조금 다를 뿐이라고 이해하는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미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팀장은 “장애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느끼고 ‘장애인이 왜 밖에 나오냐’고들 한다”며 “장애-비장애인이 접촉면을 늘려가면서 ‘내 주변 사람’이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장애인시설 관계자의 말은 함께 사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자폐성 장애인이 근처 슈퍼마켓에서 말 없이 물건을 집어오니 슈퍼 주인이 찾아왔어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인데 이 정도도 이해 못하겠냐’며 알고만 있으라고 하고 가더군요.” 그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언제쯤 갖게 될까요”라고 안타까워했다.
박지연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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