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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 학교.. 학생들을 존엄의 존재로 길러라"

입력
2016.04.15 04:40

똑같은 행복 기준 강요하던 교육

참사 겪으며 안전 도모에만 골몰

다양한 사고, 감정 활동 억눌러

학생은 준비하는 자 아닌 삶의 주체

기쁨과 슬픔 온전히 느껴야 성장

“학교를 실험, 상상의 공간으로”

이수광 경기도교육연구원 교육연구부장이 연구원 정문에 걸린, 자신이 만든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 앞에 섰다. 간디학교, 이우학교 등 대안학교를 무대로 교육 혁신을 몸소 실천해온 이 부장은 경기도교육청이 오는 18일 공개할 예정인 ‘4ㆍ16교육체제’ 보고서의 연구책임자다. 수원=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이수광 경기도교육연구원 교육연구부장이 연구원 정문에 걸린, 자신이 만든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 앞에 섰다. 간디학교, 이우학교 등 대안학교를 무대로 교육 혁신을 몸소 실천해온 이 부장은 경기도교육청이 오는 18일 공개할 예정인 ‘4ㆍ16교육체제’ 보고서의 연구책임자다. 수원=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2주년이다. 눈앞에서 304명의 생명이 사라졌다. 다 구할 줄 알았는데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더구나 절대 다수가 학생이었다. 수학여행이라는 교육활동 중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본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지만 위기 때 움직여야 하는 시스템이 작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나라 전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년이 지난 다음 한국의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경기교육연구원에서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이수광 교육연구부장을 만나 세월호 이후의 교육 체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4ㆍ16 참사는 그동안 우리를 지배했던 교육문법의 종말이다. 희생자 다수가 학생이란 점, 특히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따르던 학생들의 비극적 희생이란 점에서 우리가 학생들이 어떤 존재로 성장하길 기대했는지 되묻게 한다. 또한 모든 방면의 부실과 무책임과 한심함의 결정인 세월호 참사 이면엔 그러한 삶의 왜곡된 모습을 구성하는 신념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신념체계의 중심에 ‘능력주의’가 있다. 인간 존재의 품격이나 좋은 삶에 대한 성찰보다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좋은 학벌을 얻어야 한다. 교육은 그러기 위해 점수를 올리는 기능과 기법에만 몰두했다. 그래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만든 신념체계가 이처럼 오랜 시간 누적된 교육적 왜곡과 맞물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세월호 이후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면 안전교육이 강화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과 방법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

“교사라면 인간존재에 깊은 이해 갖춰야”

교육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권고하며 양성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돌아보면 신기할 정도로 학교에서 사라진 말이 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과거 훌륭한 사람은 자기를 희생하며 국가나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다. 국가의 발전에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라는 요구였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교육의 강조점은 점차 ‘훌륭한 사람’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옮겨갔다. ‘아이’들의 행복을 중심에 둔 진보 세력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교육청에서도 이제는 다들 행복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 행복의 실체가 바로 지금의 불행, 참사를 만든 원인이자 결과라고 그는 지적했다.

“훌륭한 사람은, 아마 좋은 삶을 사는 존재일 것이다. 학생들이 그런 좋은 삶, 존재의 값어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대화하고 성찰할 교육 과정이 없다. 그러니 행복한 삶을 살겠다고 하는데 행복의 내용이 이런 거다. 큰 집도 필요 없어, 적당히 30평짜리. 좋은 차 필요 없다, 3,000㏄. 많이 가지려고 하는 건 아냐,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 다녀오는 정도면 돼. 그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우리 사회에서 고용의 불안이 전혀 없고 수입이 상당히 보장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이다. 소박하다고 말하는 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학생은 탈락한다. 계속 결핍만 확인하며 자존감을 잃게 된다. 이게 잔인하다는 거다.”

그는 학교를 ‘욕망의 전위조직’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일찍이 학교가 욕망을 실현시기 위한 학부모, 교사를 포함한 학교 당국 그리고 학생들 간의 공모관계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지금의 학교는 교사도, 학생도 적당히 공모하며 분주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분노하거나 나른한 존재로 만들 뿐이다. 나아가 세월호는 가르치는 일을 무서운 것으로 만들었다. 한 교사는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게 되면서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그나마 안전을 도모하는 것처럼 되면서 교육 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를 넘어서기 위해 교육은 다시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가 다시 강조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기능과 기법에 능숙한 교사가 A급 교사가 될 순 없다. 교육공학자가 될 뿐이다. 교사들의 교육 과정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이해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그런 교육과정이 정말 필요하다. 학생들의 미세한 변화를 잘 읽어내고 격려해주는 것이 교사의 본분이자 본래 역할이다. 아이들을 깊게 보려면 인간존재에 대한 철학적 이해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교사들이 이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학생은 준비하는 자 아닌 삶을 사는 자”

그는 416 이후 학교는 뜨거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 때문에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 실험이 가능한 곳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교사들의 삶도 역동적이 된다. 볼 것도 많아지고 교육적 희열도 많이 얻게 되며 교사 역시 가르침에 대해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야 학교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의미 있는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바뀌어야 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학생들을 예비자로만 인식한다.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예비자. 그러나 학생들 역시 지금 자기 삶을 사는 존재다. 더구나 자신의 가치를 고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다. 학교는 학생들이 자기 삶을 사는 존재로 규정하고 그 삶을 살도록 장을 열어주는 곳이어야 한다. 나는 학교가 아이들이 다양한 사고실험과 상상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말로는 학교는 ‘실험과 상상의 플랫폼’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사고실험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공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가 특정한 기준을 갖고 공부 이외에는 배제시키다 보니까 공부보다 다른 쪽에 능력 있는 친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 존재에 대한 규정이 바뀌어야 한다.”

이수광(왼쪽) 부장과 엄기호씨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실에서 대화하고 있다. 수원=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이수광(왼쪽) 부장과 엄기호씨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실에서 대화하고 있다. 수원=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학교는 기쁨ㆍ슬픔 온전히 느끼는 공간이어야”

특히 그는 학생을 존엄의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세월호 사건 이후 학생을 안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설 것에 대한 주문이다. 존엄은 개인이 소유하는 권리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관계맺음의 문법이다. 이를 위해 그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세월호 애도의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애도를 통해 우리는 생명의 절대성을 배우고 존엄에 대한 감각을 가질 수 있다.

“세월호와 관련해서 말한다면 학생들이 자신들의 슬픔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이야기되는 인성교육의 토대도 슬픔과 기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학교라는 공간에선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자꾸 제한하고, 이래서 인성교육이 되겠나. 존엄으로 가기가 너무 멀어진 것이다. 세월호 이후의 교육이란 바로 이런 부분을 바꾸자는 것이다. 교육의 원형이란 존엄교육을 하는 것이다. 내가 존엄하게 살기 위해 어떤 삶의 기술을 가져야 하는가를 얘기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껏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은 처세기술이었다.”

그의 말에서 학교에서 학교 폭력으로 한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자 교내 방송으로 동요하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동료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하고 기억하는 것이 막힐 때 생명과 존엄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그 즈음에 만난 한 학생은 이에 대해 ‘결국 죽으면 자기만 손해이며 개죽음’이라고 말했다. 이런 조건에서는 공동의 노력으로 공통의 터전을 만드는 시민적 주체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처세의 기술만 터득한다. 바로 이것을 뒤바꾸는 것이 세월호 이후 우리가 꿈꾸어야 하는 교육이다. / 문화학자

▦이수광 부장은

1965년 강원 홍천 출생. 강원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교사로 임용됐다. 10년 간 공립학교에 재직하며 교육의 본령에서 멀어진 학교 현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다. 2000년 학생인권 연구로 모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공교육 현장을 떠나 대안학교(간디학교, 이우학교)와 대학(동양대)에서 가르쳤다. 지난해 3월 10년 간 몸담았던 이우학교를 떠나 경기도교육연구원에 부임, 4ㆍ16교육체제 연구책임자로서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체제 전환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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