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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과 이상의 마찰 속에서 ... IT로 민주주의 발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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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독학자라고? 의아할지 모르겠다. 그는 줄곧 현실에서 분투한 실천가였고 정치인이었다. 지지자와 적대자를 막론하고 언제나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그에게서 세속으로부터 단절된 채 특정 학문이나 전문분야에 몰입하여 일가를 이룬 독학자의 이미지를 읽어내는 일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공식적 이력의 첫머리에는 항상 독학으로 제17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놓인다. 일생에 걸쳐 가장 큰 성취감을 맛보게 했던 그 경험을 계기로 그는 독학에 대해 남다른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 역정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그는 독학했다. 탄핵 소추를 당했던 시기 및 퇴임 이후의 한동안 그가 줄곧 책을 읽고 글을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독서대 발명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 만들다
그의 발명 취미도 유명하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1974년 그는 개량 독서대를 특허출원했다. 책 받침대의 높이와 경사도를 조절하여 허리를 굽히지 않고 독서할 수 있도록 고안했던 것이었다. 좌식 책상이 일반적이었던 당시 나름 쓸모는 있었을 테지만 엄청난 것은 아니었다. 지인들과 실물을 제작하여 사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도 한다. 단지 실제의 불편을 스스로 궁리하여 기술적으로 해소하려는 자세의 한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기술 입국의 이념과 유행에 편승한 청년의 일회적 치기에서 비롯된 발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이후 행적에서 알 수 있다. 여러 증언이 있지만 구체적 성과물로 확인되는 것은 소프트웨어 개발이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그는 이듬해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한 후 IT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인명관리통합프로그램 ‘한라 1.0’, 정당운영을 위한 그룹웨어 ‘우리들’ 등의 개발을 주도했다. 당시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1998년에 업무표준화프로그램 ‘노하우2000’으로 발전시켜 대통령 후보 시절 활용하기도 했다.
그는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의 종류 및 원리, 데이터베이스 등을 독학했고, 프로그램 기획안을 작성하는 등 전문가 수준의 소양을 습득했다. 집권 후에도 청와대업무관리통합시스템 ‘e-지원(知園)’의 개발과 도입에 중요하게 기여했던 그는 ‘e-지원’의 발명자 중 한 사람으로 특허 등록되어 있다. 그가 역대 대통령 중 IT 분야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독보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여러 전문가 및 동료들의 협조가 있었겠지만 근본적 차원에서 그것이 독학으로부터 비롯된 역량이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IT를 민주주의적 개혁의 모델로 삼다
IT와 같은 신기술을 습득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데만 그쳤던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프로그램 및 시스템 개발에서 그가 우선적으로 착안했던 것은 업무 통합관리의 효율성이었다. 하지만 다방향적 지식 공유 및 의사소통을 수월케 하는 IT의 특성을 활용하여 정책 결정 과정 및 여론 생성과 수렴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을 관철하고 실현하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즉 그는 IT라는 형식과 민주주의라는 내용을 발전적으로 일치시키는 정치적 비전과 실험을 기획했다. 그것은 그가 맡았던 해양수산부 나아가 정부 전반에 수평적ㆍ다방향적 의사 결정 구조를 정착시키려 애썼던 일관된 실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퇴임 이후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주요 과제 중 하나이기도 했고 그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사이트 ‘민주주의 2.0’도 개설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IT를 단순한 기술로서가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원동력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는 역사적 흐름을 선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IT의 본질에 대한 그의 미래지향적 식견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를 인식하게 되면 바로 개선을 도모했던 그의 일관된 태도와도 잘 부합했다.
실용주의와 이상주의의 두 얼굴
그에게는 기술이나 제도에 대해서 실용을 중시하는 태도와 민주주의적 이상을 추구하는 자세가 길항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2.0’의 경우처럼 양자의 조화를 지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때로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특히 이라크 파병이라든가 한미 FTA 추진, 대연정 제안 등 지지자들의 이반을 초래한 실책은 국내외 정치적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상보다 실리를 추구하려는 태도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그러한 선택이 차선으로서 불가피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안에 따라 비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적도 없지 않았다. 실용주의자 및 이상주의자로서의 두 얼굴은 그의 정치적 역정에서 여러 모순을 야기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그 자신의 원칙과 판단에 입각하여 소신을 밀고 나가려는 일관된 태도의 산물이었다는 점에 있어서 만큼은 공통된 측면이 있다.
본래 민주화운동에 관심이 없었던 그가 인권변호사로 전회한 후 자신이 변호해야 할 여러 피고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관련 서적을 탐독했던 사실 또한 유명하다. 그리고 이는 그러한 부조리한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모순과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독서로 이어졌다. 독서는 한국의 정치ㆍ사회적 현실에 대한 그의 인식과 태도를 일변시켰으며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결정적인 계기 및 중요한 지적 자산으로 작용했다.
또 그는 본래 아내(와 여성 일반)를 비하하는 농담을 서슴지 않던 가부장적 인간이었으나, 청년들과의 만남 및 관련 서적에 대한 독서를 계기로 잘못을 깨닫고 그런 태도 역시 바꾸려 애썼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즉 그는 책을 읽고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원리를 발견하면 그것을 정치적 현실에 관철시키거나 때로 자신을 수정하는 일마저 주저하지 않았다. 새로 습득한 첨단 지식 중에서도 그런 원리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으면 실제로 구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특히 민주주의적 원칙과 상식의 준수가 공동체의 장기적 안녕을 도모하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한 정치인이 비단 그만이 아니겠으나 독학의 결과를 대통령으로서 작게는 정부의 의사소통 시스템에 크게는 국정 운영 전반의 차원에 적용했던 이는 그가 유일했다.
책 읽고 다시 쓰기, 민주주의 독학하기
물론 정치인으로서 그는 공과가 있다. 그가 추구했던 이상이 완전했던 것도, 실패와 한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가 추진한 정책에 의해 많은 이들이 희생된 사실은 엄연하다. 다만 그가 평생 독학의 결과를 실제의 삶과 정치적 현실에 관철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목전의 이해 때문에 책에서 읽은 원칙과 신념을 매순간 철회하거나 변경하기 일쑤인 범속한 다수와 대비된다. 그렇지 않은 개인은 소수일 수밖에 없으므로 증오와 배척의 대상이 된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가 단언한 바처럼 책을 철저히 읽고 그 결과를 현실에 관철시키려는 노력, 즉 다시 쓰는 일이야말로 세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으며, 루터나 무함마드의 혁명은 그러한 독학의 결과였다. 그의 독학 또한 책을 읽고 다시 쓰는 행위의 이상에 일정 부분 근접해 있었다. ‘e-지원’이나 권의주의 타파 등은 그가 읽고 다시 쓴 현실의 일부다.
그 일관된 독학의 결정적인 좌절은 그의 비극적 죽음을 초래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는 유서의 문장은 통절하다. 그것은 그가 현실에 관철시키고자 했던 일체의 (독학했던)원칙과 비전이 정적에 의한 반동 및 좌절에 직면했음을 고하는 애끊는 호소(斷章/斷腸)였다.
어느덧 20대 총선이다. 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명목상 천명하는 제1야당 내에 총선 승리를 명분으로 한 정치공학과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그것이 특정 기득권 집단을 포섭하고 외연을 확장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전술임을 모르지 않는다. 백 번 양보해 승리에의 절실한 의지가 생겼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괴물과 싸우려다 괴물이 되어버린 격이다. 즉 오로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패권장악을 위한 정파 간 정치공학적 다툼에만 골몰하며 또 능한 현 집권세력과 수하들을 답습하는 퇴보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대화와 토론, 설득과 타협이 설 자리는 부재하다. 오직 지위와 권력의 이해관계에 의한 거래와 협잡만이 있다.
한 사람에 의한 당권 장악 및 무소불위적 행사라는 사태가 시대를 역행하여 회귀하지 않았는가.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이상과 상식의 원칙을 독학한 대로 관철하려고 자신의 권력을 제한했던 실천은 이제 텍스트에만 있는 과거의 기억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을 다시금 독학하는 것, 즉 민주주의라는 책을 철저히 읽고 다시 쓰는 일은 결국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2월의 필리버스터는 그것이 일시적으로 현현한 사태다. 그가 온몸으로 쓴 성공과 좌절, 운명의 이력과 행적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독학하려는 이들에게 문제적인 책 자체가 되었다.
조형래 문학평론가
공동기획: 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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