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훈의 자동차 현대사] ‘SUV 바람’은 갤로퍼에서 시작됐다.

입력
2016.03.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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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인터쿨러 터보 롱보디 모델.
갤로퍼 인터쿨러 터보 롱보디 모델.

1992년 어느 날 선배 기자에게 시승을 위해 ‘갤로퍼’를 받아오라는 명을 받고 서울 원효로에 있던 현대자동차서비스를 찾았다. 키를 받고 차를 움직이는데 꿈쩍도 안 했다. 사륜구동 시스템 중 하나인 부변속기가 중립에 있었던 탓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부변속기를 넣고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차가 이상했다.

지금은 사라진 삼각지 고가도로에서 5단 기어를 넣었는데도 좀체 속도가 나지 않았다. 부변속기를 4L에 넣은 탓이었다. 4L은 구동력이 강한 대신 저속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지금은 스위치 하나만 작동시키면 되지만 당시엔 일일이 변속레버를 수동으로 조작하는 방식이었다. 자동차 전문기자를 꿈꿨지만 참 무식했던 시절이었다.

갤로퍼는 당시 현대그룹의 자동차사업에서 매우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는 모델이었다. 정세영 회장의 현대자동차가 아닌 정몽구 회장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서 생산하고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판매하는 시스템이었다. 정주영 회장이 정세영 회장에게 자동차 사업의 전부를 맡기지 않고 그 일부를 장남에게 떼어준 것이다. 정몽구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결국 현대자동차를 맡게 됐고 오늘의 현대자동차그룹을 일궜으니 갤로퍼는 정몽구 회장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갤로퍼가 없었다면 지금의 현대차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갤로퍼의 원래 모델은 일본 미쓰비시의 ‘파제로’다. 파제로는 파리 다카르 랠리에서 수차례 상위권에 진입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끈 최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지금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정공이 파제로를 선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1991년 10월 첫 모습을 드러낸 갤로퍼는 불과 1년 만에 2만4,000대가 팔리며 SUV 시장의 절반 이상을 휩쓰는 인기 차종으로 떠올랐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SUV 바람’은 갤로퍼의 등장으로 시작된 셈이다.

갤로퍼는 경쟁사인 쌍용자동차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화려한 세부모델을 자랑했다. 축간거리가 길고 짧은 ‘롱보디’와 ‘쇼트보디’는 물론 2인승 밴, 9인승 등 다양한 차체가 있었다. 또 디젤, 디젤 터보, 디젤 인터쿨러 터보, 가솔린 등의 엔진이 있었고, 나중에는 LPG 엔진도 추가됐다.

출시 당시 2.4ℓ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이 73마력이었지만 이후 과급기(터보 차저)를 장착해 81마력, 다시 흡입공기냉각장치(인터쿨러)를 더해 101마력까지 성능을 끌어올렸다. 지금이야 시시한 출력이지만 그때는 대단한 수준이었다.

당시 사륜구동차에는 의무적으로 등화관제등(Black-Out Lamp)을 앞에 1개 뒤에 2개 총 3개를 달아야 했다. 전시에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80년대에는 모든 사륜구동차가 전시동원 대상 차량이었고, 보급대수가 늘어난 90년대에는 추첨으로 대상 차량을 지정했다. 등화관제등 장착 의무는 2000년에 해제됐다. 갤로퍼가 단종된 것은 이보다 앞선 1997년 3월이었다.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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