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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집행정지는 ‘합법적 탈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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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탈옥’이란 말을 들어 보셨나요.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일시 석방시켜 주는 구속집행정지나 형집행정지, 보석 등의 제도를 비꼬는 말입니다. 법에 분명히 보장돼 있고 사법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게다가 대부분은 인도적 차원의 사유로 일정한 제한을 두고 풀어주고 있는데도 왜 이런 말이 생긴 걸까요.
그런데 잠깐,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런 제도들이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인지 용어 정리부터 먼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법조문을 한번 뒤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속집행정지(형사소송법 101조)= ①법원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결정으로 구속된 피고인을 친족·보호단체 기타 적당한 자에게 부탁하거나 피고인의 주거를 제한해 구속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②전항의 결정을 함에는 검사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 단 급속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형집행정지(형사소송법 471조)= 징역, 금고 또는 구류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다음에 해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형을 선고한 법원에 대응한 검찰청 검사 또는 형의 선고를 받은 자의 현재지를 관할하는 검찰청 검사의 지휘에 의해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형의 집행으로 인해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는 때 ▦연령 70세 이상인 때 ▦잉태 후 6월 이상인 때 ▦출산 후 60일을 경과하지 아니한 때 ▦직계존속이 연령 70세 이상 또는 중병이나 장애인으로 보호할 다른 친족이 없는 때 ▦직계비속이 유년으로 보호할 다른 친족이 없는 때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
◆보석(형사소송법 94조~104조)=피고인, 피고인의 변호인ㆍ법정대리인ㆍ배우자ㆍ직계친족ㆍ형제자매ㆍ가족ㆍ동거인 또는 고용주가 법원이 정하는 보증금을 내고 석방을 청구하는 제도(보석과 관련한 조항은 꽤 많아서 모두 옮기지 않고 간략한 설명으로 대체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구속집행정지는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에 대해 법원이 일시 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고, 형집행정지는 형이 확정된 기결수에 대해 검찰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구속집행정지 요건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라고만 정해져 있어 법원 재량이 꽤 큰 반면, 형집행정지의 경우는 구체적 사유가 명시돼 있는데다 아예 외부위원이 포함된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가 가부를 정하도록 하고 있어 보다 엄격한 편입니다. 보석은 법원에 보증금을 내는 조건으로 풀려난다는 점에서 이들 제도와 차이가 있는데, 취소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석방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피고인한테는 가장 유리합니다.
하지만 보석신청을 기각할 수 있는 예외적 사유가 꽤 폭넓게 규정돼 있어 허가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때 ▦누범에 해당하거나 상습범인 죄를 범한 때 ▦증거인멸ㆍ도주우려가 있는 때 등으로 사실상 구속요건과 같아 구속영장 발부 때와 비교해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으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입니다. 때문에 구속된 재벌기업 오너 등은 보석 대신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장 최근에 구속집행정지 등과 관련해 언론을 장식한 사례는 지난해 12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고 대법원에 재상고해 2년 9개월째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입니다. 이달 18일 대법원은 이 회장이 낸 구속집행정지 연장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그는 신장이식수술 부작용, 신경근육계 희귀병 등을 앓고 있어 정상적 수감생활을 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대법원은 “검찰도 피고인의 건강 상태에 비춰 구속집행정지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불구속 상태로 신병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가 인정된 셈이죠.
이로써 당초 이달 21일까지로 정해졌던 이 회장의 구속집행정지는 다시 4개월 후인 7월 21일까지로 늘어났습니다. 2013년 7월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그는 같은 해 8월 건강상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4월 이를 연장해 달라는 신청이 기각돼 재수감됐지만, 2개월 후 다시 구속집행정지 결정이 났고 그 이후부턴 계속 연장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그의 수감생활 기간은 ‘107일’에 불과합니다. 만약 파기환송심 선고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고 건강이 회복될 경우 2년3개월 정도를 복역해야만 하는 것이죠.
이 회장의 병세는 실제로 대단히 심각해 인도적 차원의 구속집행정지라고 할 만합니다. ‘재벌 봐주기’로 볼 여지가 적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나 유력 정치인들이 법의 심판대에 오를 때마다 ‘구속→휠체어→구속집행정지 또는 보석’의 코스가 반복되는 걸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죠.
권력과의 친소에 따라 잣대가 다르다고 할 만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명박(MB)정권 시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은 2009년 4월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 됐는데 당시 그는 뇌종양 투병 중이었습니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병 보석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반대했고 법원도 이를 기각했습니다. 한 달 후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석방돼 수술을 받긴 했으나 병세는 그다지 호전되지 않았고 2012년 8월 건강악화로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면 MB정권의 실세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파이시티 비리로 구속돼 있던 2012년 5월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이 나기도 전에 병원으로 옮겨져 혈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는 집행정지 신청을 낸 당일 구치소장의 허가를 받아 병원으로 향했고, 이틀 후 곧바로 수술을 받느라 법원에서 열린 심문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구속집행정지 결정 이전에 병원에 먼저 가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 상당히 당황스러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구속집행정지 제도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핵심은 공정성입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격언을 순순히 믿기는 어려울 정도로 우리 사회의 사법불신이 큰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그런 믿음 외에 기댈 곳은 딱히 없어 보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인도적 차원에서 만든 제도가 권력층을 위해서만 운용돼 ‘합법적 탈옥’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우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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