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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 유형으로 즐기는 ‘필리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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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제정안 표결 저지를 위해 시작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어느새 140시간을 넘겼습니다. 6일간 거쳐간 의원 수만 27명이 넘습니다. 2월 23일 저녁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첫번째 주자로 나설 때만해도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던 필리버스터는 어느새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필리 페스티벌’로 불릴 만큼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페스티벌인 만큼 시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필리버스터를 즐기고 있는데요, 생중계 사수파부터 국회 방청파까지 ‘필리 페스티벌’의 각양각색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현대사 강의’ 들으러… ’마국텔’ on!
필리버스터를 생중계하는 국회방송을 비롯한 온라인 채널들은 요즘 네티즌들에게 ‘마국텔’이라고 불립니다.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고 채팅창의 대화 내용까지 콘텐츠로 활용하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국회 버전이라는 겁니다. 김광진 의원이 텅 빈 국회 본회의장에서 5시간 33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이어간 모습에 호기심을 가진 네티즌들은 생중계 영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수 시간 동안 혼자 서서 발언하는 내용이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던 이들은 국가정보원과 관련된 내용에 점점 몰입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SNS에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한국 현대사 인터넷 강의같다’는 네티즌 반응이 많았습니다. 25일 오후 8번째 주자인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토론 당시에는 4만명 이상이 동시 접속하며 뜨거운 인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10시간 발언 중 콕 집은 명문장
29일 오후 현재 140시간을 넘긴 필리버스터를 통해 테러방지법과 관련된 방대한 분량의 발언과 자료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자발적으로 의원들의 발언에서 주요 문장을 기록하고 관련 정보를 아카이브에 정리하고 있습니다.
25일 개설된 필리버스터 투데이(http://www.filibuster.today/)에서는 필리버스터 기록부터 테러방지법 반대 서명 사이트까지 관련 이슈를 총망라한 정보를 제공하며 방문자 수가 32만명을 넘었습니다. 필리버스터 초반부터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 필리버스터에 나선 이유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가 카드뉴스 등으로 만들어지고 SNS로 급속히 공유되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크게 끌어올렸죠. 여기에 필리버스터를 처음 접한 네티즌들의 소감이 만화 등으로 만들어지면서 많은 공감을 샀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국회에 울려퍼진 네티즌의 목소리
‘마국텔’ 본방 사수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네티즌들은 직접 테러방지법에 대한 의견을 메시지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필리버스터 릴레이’(filibuster.me)는 필리버스터에 나선 의원들에게 네티즌들이 의견을 남기는 사이트인데요. 벌써 3만 6,000건 이상의 의견이 등록됐습니다. 25일 7번째 주자인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이곳에 올라온 시민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일반 시민의 목소리가 국회에 울려 퍼지는 것은 처음 본다’ ‘시민 의견을 들으니 내용이 훨씬 풍부해지고 이해도 잘 된다’며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습니다.
의원들의 SNS로 직접 의견을 전달한 네티즌들도 많았습니다. 25일 6번째 주자로 나선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소녀의 메시지를 전하며 필리버스터를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 전 17살 소녀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꿈은 국회의원인데, 꿈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이 놀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필리버스터 하는 걸 보면서 ‘아, 내가 좋은 꿈을 가졌구나’라고 생각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죄읽남‘ ’힐러 리‘ ‘조포이’… ‘의원님’과 놀아요
‘마국텔’이 ‘꿀잼’이 된 배경에는 생중계 영상과 함께 진행된 라이브 채팅방이 있습니다. 채팅방에서 네티즌들이 의원 개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별명을 붙여주고 공유하는 일이 마치 놀이처럼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중계 영상의 채팅창에서는 의원들의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에 따라 재치 있는 별명들이 만들어졌는데요. 신경민 의원은 '국정원을 말한다'를 발췌 낭독하며 국가정보원의 과오들을 지적해 '죄 읽어주는 남자(죄읽남)'이라는 별명이, 강기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장을 마칠 때마다 한숨을 쉬어 '한숨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아나운서와 같은 목소리로 토론을 이어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전마마란 별명이 붙는가 하면 김남주와 마르틴 니묄러의 시를 낭독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 읽어주는 남자(시읽남)'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뿐만이 아닙니다. 토론 주자들에게 중간중간 말을 걸며 휴식을 유도한 이석현 국회부의원장은 '힐러 리'라는 별명이,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해 필리버스터 정국을 열었던 정의화 국회의장은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의장석에서 조는 모습이 생중계에 종종 잡혀 '멜팅 정'이란 별명이 붙었네요. 의원석에서 토론 주자의 발언에 시시때때로 항의하는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에게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밉상 학생인 말포이의 이름을 단 '조포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장시간 생중계 토론을 통해 시민들이 근엄하고 딱딱하단 인상을 가졌던 국회의원들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 셈인데요. 다음 토론 주자에게는 어떤 별명이 붙게 될까요?
주말엔 온 가족과 국회 방청 나들이
온라인의 흥겨운 '필리 페스티벌'은 오프라인으로도 옮겨갔습니다. 필리버스터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으로 향하는 발길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요.
지난 26일 전북 정읍에서 140여명의 고등학생들과 부산에서 온 80여명의 학생들이 11번째 주자 서기호 정의당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방청했습니다. 주말인 지난 달 27, 28일에는 청년들과 나들이 가려다 국회로 발길을 돌린 가족들까지 1,600여명이 몰렸습니다.
한편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23일 밤 국회 앞에서 진행된 시민단체 주도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반대 시민 필리버스터'(시민 필리버스터)도 29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을 받는 건 10대들의 필리버스터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방송 캡쳐화면이나 주요 발언을 정리한 내용 등을 보고 필리버스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직접 응원을 위해 국회까지 찾았다고 하는데요. (관련기사)
필리버스터에 풍부한 자료와 의원들의 호소력이 더해지면서 단순한 기록 경신 경주가 아닌 국회가 '민주주의 학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아닌, 국회의원의 진짜 역할과 민주주의의 현장을 시민들이 국회에서 발견하게 됐다는 점이 큰 의미라는 겁니다. 1일로 일주일째를 맡는 ‘필리 페스티벌’, 앞으론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요?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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