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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 "응팔 정봉이를 만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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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같은 성격의 라미란 여사에게 야단을 맞은 뒤 동그란 두 눈을 끔뻑거리며 뒤통수를 긁적이던 쌍문동 정봉이 형은 잘 지내고 있을까? 대학에 여섯 번씩이나 떨어진 ‘7수생’ 신분에도 오락실을 들락거리고 사랑에 빠진 여성을 위해 뭉툭한 손으로 종이학을 접던 철딱서니 없지만 이 순수한 청년을 시청자들은 한 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를 연기한 배우 안재홍(30)도 마찬가지다. 2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지난달 종영한 tvN ‘응답하라 1988’(응팔) 속 정봉이를 가리켜 “매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해 준 캐릭터”라는 말로 애정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전 tvN 여행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촬영 탓에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나타난 안재홍은 “아주머니들이 좋아해줘서 더 기쁘다”며 웃어 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응답하라 1988’이 종영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도 배우들의 인기가 여전하다. 실감하고 있나?
“실감한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알아본다. 나라면 나를 못 알아볼 것 같은데 얼떨떨하고 신기하다. 정말 ‘응팔’을 많이 사랑해주셨구나 생각한다. 어제 친구들과 냉면을 먹으로 갔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정봉이)맞지요? 드라마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하시더라.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특히 좋아해주신다(웃음). 더 기분이 좋다. 그만큼 폭 넓은 연령층에서 사랑 받았다는 뜻이니까. 아, 연락이 끊겼던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도 왔다.”
-‘정봉이’를 연기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정봉이를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생각뿐이다. 그런데 촬영 당시에는 꽤 예민했다. 정봉이의 성격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선을 잘 타고 가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벗어나는 연기를 해도 세상과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다 보니 정확하게 표현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극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매 회 정봉이가 무언가에 꽂혀 있는 게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9화에서 사찰에 들어가 생활하는 장면이 나에겐 베스트였다. 실제로 절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중학교 때 한 달, 고등학교 때 한 달, 방학 때마다 합천 백련암으로 단기 출가를 했었다. 집중력 좀 키우라는 부모님의 권유 때문이었다(웃음). 삼천 배도 지금까지 여섯 번이나 했다. 그런데 마침 정봉이도 절에 들어갔고 (‘응팔’의)신원호 PD가 “정봉이는 법복 핏(fit)이 제일 좋다”고 하시더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사 있나?
“2화에서 오락실에 가기 위해 어머니에게 ‘백원만 주십시오’라고 했던 대사다. 2화에서 정봉이의 유일한 대사여서 기억에 남는다. 원래 대사는 ‘어머니 백원만 주십시오. 백원만 있으면 올림픽과 함께 하루 종일도 놀 수 있습니다’였다. 그런데 ‘백원만 있으면 올림픽 영웅과 함께 하루 종일 놀 수 있습니다’라고 애드리브를 했다. 왜 그렇게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웃음).”
-‘응팔’에 합류하면서 살을 많이 찌웠는데 지금 체중 감량 중인가?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촬영 때문에 얼굴이 타서 좀 빠져 보이는데 정봉이 때와 비슷하다(웃음). ‘응팔’ 촬영을 시작하면서 한 8㎏을 찌웠다. 찌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되는 몸이다. 그냥 많이 먹으면 찐다. 그런데 15화 넘어 가면서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나도 제작진도 당황했다. 다른 작품도 들어갈 텐데 이제 좀 빼야겠다.”
-정봉이 역에 캐스팅된 이유는 뭘까?
“오디션 때 신 PD님이 ‘네 얼굴이 마음에 든다. 우리 드라마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다. 그게 이유인 것 같은데…”
-가장 듣기 좋았던 칭찬은?
“온라인 댓글 중 베스트에 꼽힌 댓글을 잊을 수가 없다. ‘진짜 어릴 때 우리 동네 아는 형 같다’라는 댓글이었다. 공감수도 엄청나게 높더라. 그 때 정말 기분 좋았다. 특별한 미사여구를 동원한 칭찬은 아니지만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공감한다는 의미라 감사했다.”
-극중 장미옥(이민지)과의 러브라인으로 사랑을 받았다.
“요즘 시대에 없는 순수한 사랑이기에 더 멋있었던 것 같다. 순애보적인 사랑이랄까?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사랑이다. 앞뒤 재지 않고 다 보여주는 사랑이다. 워낙 현장에서 장난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러브신도 진지하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웃음). 영화 ‘늑대의 유혹’의 강동원 패러디를 할 때는 강동원의 사진을 찾아서 민지한테 직접 보내주기도 했고 연습도 많이 했다.”
-정봉이의 가족이 유독 인기를 끌었다. 극중 부모로 나온 김성균ㆍ라미란과의 호흡은 어땠나?
“미란 선배와 성균이 형 두 분다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다. 일단 미란 선배는 촬영장만 오면 바로 안아주시고 이보다 자상할 수가 없이 정말 좋았다. 실제로 보면 정말 예쁘셔서 놀랐다. 성균이 형 때문에 NG를 많이 냈다. 웃음을 잘 참는 편인데도 성균이 형과 연기할 때는 꼭 웃음이 터져버렸다. 정환이(류준열)까지 우리 네 가족 메신저 단체방도 만들었다. 조만간 고기 먹으러 갈 계획이다.”
-일상에도 큰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
“별로 바뀐 게 없다. 갑자기 명품을 산다거나 비싼 양주를 먹는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아직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닌다. 얼마 전 (박)보검이가 지하철 타고 다닌다고 기사가 많이 났던데 나도 자주 탄다(웃음). 그렇다고 지하철에서 여성 팬이 달려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편하게 다니고 있다.”
-원래 성격은 어떤가?
“다양하다. 내가 나를 봐도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고 하다. 음, 낯을 많이 가린다. 편한 친구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재미있는 면들을 보여주곤 하는데 워낙 말수도 없는 편이다.”
-촬영이 없는 평소에는 뭐하고 지내나?
“별로 하는 게 없다. 집에서 TV를 시청하거나 영화 보러 나가고 친구들 만나서 맥주 마시고 딱 그 정도다. 요새는 자취방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분양 받은 유기묘인데 6개월 정도 키웠다. 예전부터 키우고 싶었다. 반려동물 키우는 게 큰 결심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계획도 있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망설이다가 그래도 너무 키우고 싶고 각오가 생겨서 키우게 되었다. 지금 정말 행복하다. 이름은 ‘레이첼’이다. 할리우드 배우 레이첼 맥아담스(레이철 매캐덤스)를 좋아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어맨다 사이프리드)랑 후보에 놓고 고민했다. 그런데 고양이의 외향적인 느낌이 레이첼에 가까워서 그렇게 지었다.”
-본인 외모를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외모에 크게 관심이 없다. 30년 넘게 살다 보니 생긴 대로 수긍하고 인정하게 되더라. 아, 쌍꺼풀이 조금만 더 얇았으면 좋겠다. 나의 일부니까 받아들이긴 하지만. 쌍꺼풀 수술했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조금만 피곤해도 쌍꺼풀 때문에 더 피곤해 보이는 것 같다(웃음). 전반적으로 마음에 드는 외모다. 물론 조금 더 강렬하고 멋지게 생겼다면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역할에 크게 무리 없이 평범하게 생긴 것도 만족하는 편이다.”
-정봉이의 코믹한 이미지가 차기작을 고르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까?
“차기작에서 맡을 캐릭터를 생각할 정도로 경력이 많은 배우가 아니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캐릭터를 정확하게 해내고 싶을 뿐이지 그 이후를 잘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계속 연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다양한 느낌을 가진 역할을 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향은 어딘가?
“부산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해 자취 경력 10년째다. 사투리는 잘 안 쓰는데 친구들 만나거나 평소에 놀랄 일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툭 튀어나온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매일 방송이 끝나면 가족들에게 ‘잘 봤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보시고는 재미있다고 하셔서 더 기뻤다. 10~20대 사랑이야기에만 국한돼 있었다면 공감대가 이렇게 넓지는 못했을 거다. 연기자의 꿈을 가지고부터 명절 때 할머니 집에서 보던 주말 연속극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야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삼촌 다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응팔’ 같은 가족 드라마를 만난 건 행운이다.”
-‘독립영화계의 송강호’란 평가를 받는다. 어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도 안 된다. 송강호 선배님에게 죄송할 뿐이다. 송강호 선배님과 내 이름이 같이 나오는 게 말도 안 된다. 기사로도 안 써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배우로 평가 받고 싶나?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배우다. 사람들이 좋아해줘야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다. 대중예술인이다 보니 대중의 사랑이 필요하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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