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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도 분위기도 짬뽕의 제주스러움에 빠지다

입력
2016.02.19 10:10

서귀포의 유명한 짬뽕집으로 D식당이 있다. 게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문과 제주에 분점을 낼 정도다.

내가 가끔 짬뽕을 먹으러 찾아가는 곳은 강정에 있는 M식당이다. 복어 전문집인데도 짬뽕을 내놓는 특이한 식당이다. 제주스럽게도 영업 시간이 오전 10시 반에서 오후 4시까지다. 복어가 남아 있을 때까지만 매운탕이나 맑은탕을 파는데 가끔은 낮 12시 넘어서 가면 재료가 없다고 고기 짬뽕만 판다. 저렴한 가격에도 돼지 고기를 넉넉히 넣어 주는데 짬뽕보다는 밥 말아 먹기 딱 좋은 구수한 해장국 같은 맛이다.

소고기 보다 돼지고기가 오히려 인기가 많은 곳이 제주도여서일까. 복어 전문이고 바다가 가까이 내려 보이는 위치인데도 해물이 아닌 고기 짬뽕을 파는 것 같다. 아직은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 대부분의 손님이 동네 사람들이다. 대낮에 반주도 한 잔 걸치는 손님들로 식사 내내 거센 바다 사투리를 들어야 하지만 시골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집에서 꽤 먼 거리임에도 이 식당을 찾는 건 바로 이 제주스러움인 것 같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강정 포구에서 올라온 갓 잡은 생선들을 저렴하게 구할 수도 있다. 강정의 길거리에서 파는 데 아직 숨이 살아 있는 놈들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어 덤을 얻는 기분이다.

서귀포의 서쪽 맨 끝에 자리잡은 모슬포에는 마을 분위기보다 왠지 세련되어 보이는 중식당이 한 곳 있다. 포구 입구의 H식당. 그래서인지 가격도 좀 비싸고 세트 메뉴도 구성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이 집은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대기 의자도 길다. 바에는 막걸리가 아닌 중국 맥주가 진열되어 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해물 짬뽕을 주문하는데 이 집은 여타 해산물 외에 딱새우와 황게를 통째로 넣어 준다. 된장을 넣은 제주 해물 뚝배기에 독특한 맛을 내게 하는 황게와 딱새우는 사실 매콤한 짬뽕 국물과는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살이 많지 않은 황게, 그리고 새우에 비해 살을 발려 먹기 어려운 딱새우는 국물에 단맛을 나게 하는데 고추 양념보다는 된장에 더 잘 녹아난다. 아마도 이런 특이한 맛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는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매운탕에 면을 말아 먹는 듯한 친숙함이 매력이 아닐까 싶다.

서귀포로 내려오기 전에 근무했던 서울 명동의 중국대사관 주변이나 연남동처럼 오랜 내공이 스며있는 체계화된 맛의 중국집은 이 곳에 많지 않다. 무슨 문파에서 요리를 배워 음식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불에 그을린 맛이 나는 고추 기름을 넣어 지각 변동을 일으킨 짬뽕 라면도 여기선 그저 육지 소식이다.

요리를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요리사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더라도 맛에 대한 깊은 고민과 잘 먹고 간다는 인사 한 마디에 감사할 줄 아는 소박함이 진정한 셰프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비록 생선 조림과 짬뽕을 같이 팔기도 하고 복어탕과 함께 짬뽕을 조리하지만 해안의 허름한 중식당에서 짬뽕을 먹고 있으면 내가 제주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앞으로 언제까지 제주도에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육지로 이사를 가게 되더라도 가끔은 ‘서귀포 짬뽕 로드 여행’만을 위해서라도 제주도를 찾게 될 것 같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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