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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검 "응답의 저주 신경 안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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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그을린 얼굴이었다. 낯설었다. 그래도 하얀 이를 드러내고 쓱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천재 바둑기사 최택이었다. 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보검(22)은 이틀 전 tvN 여행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으로 아프리카를 다녀왔다며 “얼굴이 너무 까매졌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멋쩍은지 코를 찡긋했다.
박보검은 지난달 종방한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로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뺏었다. 덕선(혜리)의 남편 자리를 두고 정환(류준열)과 경쟁하며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최택)과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승자는 웬만한 국민은 다 알듯이 최택, 박보검이었다.
하지만 정작 박보검은 “19화와 20화가 됐을 때 ‘아, 내가 남편이구나’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20화로 끝난 드라마였으니 종방이 다 되도록 당사자도 자신이 맡은 역할의 운명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19화에서 덕선의 중년 역할을 한 이미연이 남편 역할의 김주혁과 첫 키스를 바둑 대국이 펼쳐지던 중국 베이징에서 했다고 밝히면서 ‘어남택’이 기정사실이 됐다.
“극중 정환이가 덕선의 남편인 줄 알았어요. 그간 대본의 지문과 대사를 류준열 형이 잘 살려줬고 남자가 봐도 멋있고 설렜기 때문이죠. 그런데 19화 때쯤 이미연 선배님의 성인버전 연기를 보고는 그 때 알게 된 거예요. 제가 남편이라는 사실을요.”
‘응팔’ 제작진은 대본이나 촬영일정, 촬영장소 등에 대해 철통보안을 유지했다. 내용이 미리 알려지면 극적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어서였다. 배우들에게 대본도 미리 나눠주지 않았다. 심지어 이미연과 김주혁이 촬영한 앞의 내용도 배우들에게 함구로 일관했다. 이미연과 김주혁이 연기하는 부분의 대본도 접할 수 없었다. 물론 이미연과 김주혁은 젊은 연기자들이 맡게 될 내용을 몰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보검도 “TV를 보고 그런 내용의 성인 버전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할 수 밖에.
예상치 못한 결론 때문일까. 박보검은 ‘덕선의 남편’이라는 호칭이 좀 어색했다고 했다. 그는 “얼떨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라고도 했다.
남편으로 결정된 이후에는 모든 일이 빠르게 이뤄졌다. 혜리와 호텔방과 차 안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촬영하며 생애 첫 애정신을 소화했다. 혜리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키스 장면을 찍을 때 보검 오빠가 잘 리드해줬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박보검도 데뷔 후 처음 하는 키스 장면이어서 “무척 쑥스러웠다”고 했다.
“혜리도 처음이라 힘들었을 거예요. 그럴 때는 남자가 잘 이끌어 줘야 한다고 선배들에게 들었어요. 책이나 잡지를 봐도 남자는 여자가 부끄럽지 않게 잘 리드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저, 남자입니다! 하하.”
바둑밖에 모르는 최택의 이미지는 순수 청년 그 자체였다. 덕선의 보살핌은 물론이고 정환과 선우(고경표), 동룡(이동희) 등 동네 친구들이 항상 신경 써줘야만 하는 유약한 존재였다. 부서질 듯 여린 심성을 지녔으면서도 바둑판 앞에 앉으면 질긴 승부욕을 발휘하는 최택을 보면서 여심은 ‘최택앓이’에 시달렸고 박보검은 ‘응팔’에서 유난히 빛나는 별이 됐다. 그는 “예전보다 팬 카페 회원수가 많이 늘었다”며 “감사하면서도 신기하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즐겁다”면서도 “이럴수록 행동에 더 조심하게 된다”고도 말했다.
‘응답하라 1994’로 스타 반열에 오른 정우와 유연석, 손호준 등이 그랬듯 박보검 역시 갑작스런 인기가 실감나지 않는 모양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다음 출연 작품은 대중의 열렬한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응답하라’의 저주를 언급하자 그는 별스럽지 않게 받아들였다.
“(‘응답하라’ 시리즈의)신원호 PD께서 ‘응답하라’의 저주를 입에 올리시면서 ‘너희들에게는 미안한 면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저 연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걸요.”
그의 조심스러운 자신감은 계단 하나하나 오르듯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그의 지난 활동을 살펴보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그는 학창시절 연예기획사에 그룹 2AM의 ‘이 노래’를 부른 데모 테이프를 돌리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첫 연락이 온 현 소속사 블러썸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고 배우의 길에 먼저 발을 내디뎠다. 드라마 ‘각시탈’과 ‘참 좋은 시절’에 단역처럼 얼굴을 짧게 비쳤고, ‘내일도 칸타빌레’와 ‘너를 기억해’로에서는 첼리스트와 변호사를 연기하며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영화 ‘명량’과 ‘차이나타운’, ‘블라인드’에 출연하며 차세대 충무로 스타로 눈도장을 받았다. ‘응팔’도 서너 번의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 됐다. 최택으로 갑작스레 떠오른 별처럼 보일 수 있으나 ‘반짝 스타’라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부모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열 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면 끝이다’ 등 경각심을 불어넣어 주시죠. 인기에 연연하는 배우보다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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