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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회의원은 검찰이 소환해도 버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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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눈을 가린 채 한 손엔 칼을, 또 한 손엔 저울을 든 법의 여신 '디케'를 아십니까? 이 여신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또 우리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많은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이병석(64ㆍ경북포항북)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나타났습니다. 이 의원은 2010년 포스코로부터 “신제강공장 건설중단 사태를 해결해 달라”는 등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친분 있는 한모(61)씨가 대표인 ㈜ENC 등 업체 3곳에 14억9,000만원가량의 일감을 주도록 포스코에 요구한 혐의와 업체로부터 불법정치자금 2,000만원을 받은 혐의(제3자 뇌물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를 받고 있습니다. 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김석우)는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이 의원을 대상으로 포스코가 외주업체들에 일감을 몰아주는 과정에 개입했는지, 이 업체들로부터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밤 늦게까지 조사했습니다.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가 검찰에 출석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인데도, 이날 이 의원의 출석은 ‘백기 투항’으로 해석됩니다. 4차례나 검찰 소환에 불응하던 이 의원이 비로소 두 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2차례 비공개로 이 의원에게 소환을 통보했지만 응하지 않자 공개적으로 2차례 더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당내 경선이 1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소환은 표적수사”라며 “총선이 끝나면 당당히 나가겠다”고 주장하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체포영장을 청구했음에도 버젓이 선거운동을 시작한 데 대해 비판 여론이 일고, 당내에서도 총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자진 출석하라는 압박이 이어지자 비로소 검찰 조사에 응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국회의원이 이처럼 당당하게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불체포 특권 때문입니다.
불체포 특권은 국회가 열려 있는 동안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 동의 없이 의원을 체포하거나 구금되지 않도록 보장하고, 회기 전에 체포ㆍ구금됐을 때는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될 수 있는 특권을 말합니다. 즉 회기 중에 체포 또는 구금을 당하지 않는 일시적인 특권인 거죠.
이러한 특권을 지닌 현역 의원을 강제로 데려오려면 검찰은 체포영장을 청구합니다. 법원이 체포동의요구서에 서명해 검찰로 보내면 대검찰청과 법무부, 국무총리실을 거쳐 대통령에게 전달됩니다. 대통령 재가가 떨어지면 법무부가 정부 명의로 국회에 제출합니다.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접수 후 첫 본회의에 보고하고 그 때부터 24시간 경과 후 72시간 이내에 무기명 표결에 부쳐야 합니다. 표결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참석, 출석 의원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 동의안이 통과하면 거꾸로 법무부, 대검찰청, 일선 검찰청을 거쳐 법원에 전달됩니다. 법원은 이 체포동의안에 근거해 구인영장을 발부하게 됩니다.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만들어 놓은 것은 본래 영국 하원이 절대 군주의 횡포에 부당하게 활동을 제한 받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 불체포 특권이 개인비리를 저지른 국회의원들을 보호하는 데 악용돼 왔습니다. ‘방탄 국회’라는 비난이 일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1998년 기아 비리 사건에 연루된 이신행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5차례나 방탄 국회가 열렸습니다. 법안 처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 의원이 체포되지 않도록 국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검찰은 회기가 이어지지 않는 단 하루의 공백을 이용해 이 의원의 신병을 어렵게 확보했습니다. 특히 여야 의원들이 동시에 수사대상에 오르는 경우 양당이 국회를 열기로 야합하는 일이 적지 않고,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일도 허다합니다. 역대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총 56건인데 이 중 13건만 가결됐습니다. 나머지는 부결되거나(14건) 폐기됐고(23건) 영장청구가 아예 철회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국회의 행태에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기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대해서는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습니다. 2013년 시작한 19대 국회 중 10번째 체포동의안 접수이자 6번째 표결이었고 4번째 가결된 사례입니다.
2014년 관피아 비리 의혹에 여야 의원들이 두루 연루됐을 때는 또 다시 방탄 국회가 열릴 것을 우려한 검찰이 선수를 쳤습니다. 의원회관으로 검사와 수사관 40여명을 투입해 강제구인을 시도하는 초강수를 둔 거죠.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의 교명 변경 청탁과 함께 김민성 이사장으로부터 수천 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 등을 받은 새누리당 조현룡ㆍ박상은 의원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신계륜ㆍ신학용ㆍ김재윤 의원은 검찰 소환에 불응하며 버티다가 결국 강제구인이라는 초강수와 방탄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검찰에 출석했고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2009년에는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던 한명숙 전 총리가 3차례 검찰 소환에 불응하다가 전직 국무총리로는 처음으로 체포영장에 의해 강제구인되기도 했습니다.
의원들은 결백하다고도 주장하고, 정치보복성 표적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던 의원들도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은 지은 죄가 있어서 불체포 특권 뒤에 숨으려 했다는 뜻이죠.
방탄 국회 오명을 벗기 위해 국회의원들은 체포동의안 요구가 들어 오면 지체 없이 처리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상임위에서 한 차례 논의됐을 뿐 지금까지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어 사실상 곧 폐기될 처지입니다.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국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의원들에게 부여한 불체포 특권. 의원들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악용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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