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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받고 용기 얻고...김광석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6.01.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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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주춤했던 대학로 라이브 공연 활성화를 이끈 김광석. 그래서 ‘또 해’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영원한 가객’으로 우리 곁에 있다. 1993년 공연 모습. 임종진 사진가 제공
1990년대 주춤했던 대학로 라이브 공연 활성화를 이끈 김광석. 그래서 ‘또 해’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영원한 가객’으로 우리 곁에 있다. 1993년 공연 모습. 임종진 사진가 제공

충남 공주시 계룡산 인근에 홀로 사는 박장희(58)씨는 6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릴 ‘김광석 노래 부르기 2016’에 참여한다. 예순을 앞둔 박씨가 부를 노래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고(故) 김광석이 “‘막내 아들 대학시험’ 이란 대목에 이르기만 하면 목이 메어 결국 술을 마시고 녹음을 했다”는 노래다. 2012년 유방암을 앓던 아내와 사별한 박씨는 “집사람이 투병 중일 땐 이 노래가 참 힘겨웠는데 막상 떠나고 나니 더 각별하게 다가오고, 슬픔도 덜어주더라”며 “집사람한테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회 참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둘째 딸과 막내 아들도 함께 올라와 바이올린과 건반을 연주하기로 했다. 박씨는 잠자리에 누우면 김광석 3집 ‘나의 노래’에 실린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6일 ‘영원한 가객’ 김광석(1964~1996)이 떠난 지 꼭 20년이 된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김광석의 노래는 여전히 우리를 울리고 위로한다. 공연가와 방송가에서 그에 대한 조명도 잇따른다. 최근 2~3년 사이 ‘그날들’ ‘디셈버’ 등 그를 소재로 한 뮤지컬만 네 편이 잇따라 제작됐다. KBS2 ‘불후의 명곡’은 23일부터 2주에 걸쳐 김광석 특집을 내보낸다. 김광석이 태어난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의 ‘김광석 거리’ 에는 주말이면 아직도 1,000여 명의 사람이 몰려 벽화 속 그를 추억하고 노래한다.

20주기를 맞아 김광석추모사업회는 국내 음악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재단도 설립한다. 200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로 번 수익금 3억 6,700만여원을 기반으로 한다. 초대 이사장은 김광석의 대학로 소극장 1,000회 공연을 이끈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가 맡는다. 추모사업회 측은 “학전에서 하던 ‘김광석 노래 부르기’를 올해 끝내고 앞으로 국내 음악 문화 발전을 위한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김광석이 살아 숨쉬는 이유는 그의 노래 속 이야기의 힘이다. 그의 노래엔 보통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이등병의 편지’를 부른 이가 한둘이 아니고, ‘서른 즈음에’로 방황하는 삶을 토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김광석을 소재로 한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그 여름 동물원’ 등에 김광석 역으로 출연한 배우 최승열은 “무대에서 ‘서른 즈음에’ 를 부르다 보면 객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김광석 생전 활동했던 나우누리 팬카페 둥근소리 시삽인 전수환씨는 “김광석의 노래는 유명한 가수의 노래가 아니라 내가 슬프거나 울적할 때 옆에서 토닥여 주는 형님의 얘기 같아 좋다”고 말했다.

김광석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 뮤지션이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요즘 유행하는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노래들과 달리 혼잣말 하듯 하는 김광석의 노래는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생각할 여지를 크게 남기고 더 오래 듣게 된다”고 봤다. ‘피로사회’로 불리는 요즘의 각박한 현실에서 삶을 관조하는 여유와 용기를 김광석에게서 찾는다는 뜻이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김광석의 남긴 명곡 중에는 청춘의 시련과 좌절을 녹인 노래가 많다”며 “이로 인해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뒤 태어난 ‘삼포세대’까지 꾸준히 그의 노래를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광석은 노래처럼 꾸밈이 없었다. 술을 좋아하고 유쾌했다. 한 방송 인터뷰에서 “동물원 소개를 해달라”고 하자 김광석은 “동물원 조랑말입니다”고 할 정도로 실 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관객들과도 격의 없이 소통했다. 박학기는 “대학축제 시즌에 같은 대학에서 공연을 한 뒤 헤어져 (김)광석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광석이가 다른 공연 중에 ‘학기형한테 전화 왔다’며 받은 적이 있다”며 웃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사람이 좋지 않으면 동료 음악인들이 아직까지 김광석 관련 일을 하겠느냐”는 게 박학기의 말이다. 김광석과 그룹 동물원에서 활동했던 박기영은 “김광석은 안치환 등 당시 운동권 노래패 활동을 했던 이들을 대학로 무대로 이끈 사람”이라며 “작곡가 김형석의 초기작품도 자신의 1집에 실을 정도로 후배 음악인 발굴과 새 음악에 귀를 열었다”고 말했다.

팬클럽 둥근소리 회원들은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유품전을 준비하고 있다. 둥근소리 관계자는 “2월 20일 대학로에서 김광석 팬들이 모여 노래하는 작은음악회를 여는 데 이 때 김광석 팬들이 그에게서 받은 유품을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일인 6일엔 ‘가수 김광석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추모제 ‘김광석 겨울 사랑편지’를 연다. 김광석의 고향인 대구 중구청은 9일 대봉동에 있는 김광석길 콘서트홀에서 ‘김광석 다시그리기 콘서트’를 개최한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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