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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험지(險地) 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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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제3대 총선 때 경북 달성군에서 야당인 민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조재천(曺在千. 1912~1970)은 전남 광양 출신이다. 대구사범을 나오고 경북지사를 역임했지만 호남출신이 이곳에서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요즘 같으면 좀처럼 생각하기 어렵다. 그 시절만 해도 영호남 지역감정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4대와 5대 총선 때는 대구에서 당선돼 대구ㆍ경북지역에서만 내리 3선을 기록했다. 본격적으로 영호남 지역감정이 깊어지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와 김대중이 격돌한 1971년 대선부터였다.
▦ 1990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전남 영광.함평 보궐선거에 대구 출신 이수인 영남대 교수를 전략 공천해 압도적 표차로 당선시켰다. 호남에서 영남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해 지역감정을 극복한다는 명분이었으나 오히려 뿌리 깊은 지역감정을 확인한 꼴이어서 적잖은 비판을 불렀다. 갑자기 두 사례를 떠올린 것은 요즘 새누리당에서 논란이 분분한 전략공천과 험지 출마론 때문이다. 각각 부산지역과 서울 종로 출마를 희망하던 안대희 전 대법관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김무성 대표의 설득으로 험지 출마를 받아들였다.
▦ 명망가를 접전지에 내세우는 것은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당연해 보인다. 거물급 인사가 당 공천만 받으면 손쉽게 당선되는 텃밭 지역을 꿰차겠다면 얌체 짓이라고 비난 받아 싸다. 그러나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줘 공천혁명을 이루겠다고 했던 새누리당이다. 장기판 기물 다루듯이 당 지도부가 후보들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험지 출마의 경우 경선을 하는 만큼 일방적으로 후보를 내리꽂는 전략공천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 정치적 야망이 큰 정치인이라면 접전지 출마는 리스크가 크긴 하지만, 당선만 되면 일약 대선 주자 급으로 부상할 수 있어 원하는 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순전히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또는 총선승리 지상주의로 연고나 지역민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후보를 내세우는 것은 국민의 대표를 뽑는 총선의 의미를 흐리는 일이다. 얄팍한 정치적 계산과 흥정의 산물로 당선된 선량들이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리도 없다. 친박과 비박의 어지러운 계산 속에 펼쳐지는 새누리당의 공천놀음이 걱정되는 이유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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