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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타파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위선적 정치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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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낯선 상식’ 펴낸 김욱 서남대 경찰행정법학과 교수
선거 전엔 호남 몰표 구애하고, 선거 끝나면 지역 타파 주장 모순
지역주의 진짜 이름은 영남패권주의… 영남패권 인식 없는 개혁은 필패
“영남패권주의라는 틀 없이 세상을 보면 우리 현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역대 대통령과 다음 대선 후보들을 비롯해 영남 출신들이 각계각층에서 절대적 비율로 지배적 위치에 있는 것을 영남패권주의라는 개념 없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김욱(57) 서남대 경찰행정법학과 교수는 22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최근 펴낸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 발행)을 쓴 계기를 설명하며 이렇게 반문했다. 그는 “지역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영남패권 문제로 제기하면 모두에게 낯설게 들린다”며 “한국정치를 지배하는 이 이데올로기적 상식에 대한 낯선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담아 책 제목을 정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책에서 영남패권주의를 “영남인들이 정치권력을 통해 호남을 차별, 배제함으로써 정치ㆍ경제적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하고 이러한 지역적 지배관계에 대해 사회문화 차원에서 이데올로기적 동의를 얻어내는 헤게모니”로 정의한다. “정치ㆍ경제ㆍ문화적으로 호남을 학대하고 소외시킨 정당에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아주 낯선 상식’에서 지역 모순에 대한 이런 인식 없이 개혁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이다.
김 교수는 책에서 친노 세력의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집중 비판했다. 그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내가 한국에서 가장 열렬했던 최초의 ‘노빠’였으며 가장 처음 적대적으로 ‘반노’가 된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데올로기가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 후보를 내세워 호남 몰표로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성지’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노무현 이데올로기’가 지금 새정치연합의 이데올로기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닌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자 실패의 근원은 양비론”이라고 지적했다. “영남, 호남 모두 잘못했으니 과거와 모두 단절하고 새로 출발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영남 군부에 의해 학살까지 당한 5ㆍ18을 상기해보면 대법원이 죄를 최종 인정한 15명의 반란지도부 중 2명(1명은 출신지역 미상)을 제외하고 모두 영남 출신입니다. 호남 양민이 몰표로 반영남패권 투쟁을 한 것이 뭐가 잘못됐나요. 이 질문에 대한 잘못된 이데올로기적 답변이 바로 노무현의 한계입니다.”
영남패권주의는 정치나 언론, 학계에서 금기어나 다름 없다. 지역주의의 틀로 정치를 분석하는 것도 좀처럼 환영 받지 못한다. 지역주의를 언급하는 건 금기시되지만 정작 선거를 치르면 표는 여전히 지역으로 확연히 갈린다. 영남패권주의가 노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늘 은폐되는 이유는 뭘까. 김 교수는 “영남패권주의가 현실을 설명하는 일상용어로 사용되는 순간 호남의 역사적인 반영남패권주의ㆍ반새누리당 몰표 투쟁이 정당화되고 친노의 기반인 양비론도 설 땅이 사라질 것이며 진보 세력이 생각하는 ‘계급환원주의’에 의한 진보사회의 꿈과도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새정치연합의 분열에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분열을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보는 건 오류라고 말한다. “천정배 현상이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호남의 개혁적 문제의식이 표출된 것이라면, 안철수 현상은 과거의 습관적 진영 논리가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는 징후로 보입니다. 안철수는 이를 ‘낡은 진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문재인-안철수의 결별은 습관적 진영 논리와 이를 넘어서려는 시대의 압박이 결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친노와 비노 세력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호남이 친노를 배척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노를 지지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그는 “‘선거 전엔 호남 몰표를, 선거 후엔 지역주의 타파’를 주장하는 친노는 위선적이고, 반민주적인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식 없이 단순히 반새누리당 의식 자체를 정치적 기여라고 생각하는 비노는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진보 진영에도 문제가 많다고 꼬집는다. 그는 “모든 문제를 계급(계층)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사고 체계”의 한계를 거론하며 “진보 진영의 계급환원주의는 90% 이상 반새누리당으로 조직돼 있는 호남을 해체한 뒤 10%도 안 되는 대한민국 평균 지지율로 진보 사회를 건설하자는 자멸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호남이 정치적 선거에서 자신들의 지역적ㆍ세속적 욕망을 표출하는 데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화를 책임진다는 자의식 과잉상태에서 투표에 임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야권의 인질이 되어 맹목적으로 투표할 것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반영남패권주의적 선택 투표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남과 영남 친노, 진보 세력의 이해 관계가 너무나 달라 힘을 합치는 일이 불가능하니 각자의 몫을 인정하며 새누리당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투쟁의 패러다임도 바꿔야 한다며 독일식 정당비례대표제와 내각제 동시 시행을 주장했다. “반새누리당 세력이 연대하면 얼마든지 다수가 될 수 있습니다. 정당지지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면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같은 야권 분열이 선거에 유리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제를 유지하면 여소야대의 위험을 극복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알 수 있지요. 복지국가적 분배 정의를 위해서도 대통령제의 패권이 아닌 여러 세력 간 내각제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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