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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안철수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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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못한 ‘새 정치’ 밖에선 할까
여당 압승으로 개헌 길 닦아줄까 우려
야당 분열에 정권교체 기대는 헛된 꿈
안철수 의원이 정치입문 3년여 만에 원점으로 회귀했다. 그의 말대로 “허허벌판에 혈혈단신”으로 다시 섰다. 자신이 내건 ‘새 정치실험’이 실패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그런 탓에“밖에서 새로운 정치로 국민들께 보답하겠다”는 탈당의 변은 믿음을 주기 어렵다.
‘철수 정치’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안철수는 포기와 뒷걸음질을 거듭했다. 서울시장과 대선후보 사퇴, 신당 창당 포기에 이어 네 번째다. 자신은 통 큰 양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줬고, 곁을 떠난 인물도 여럿이다. 정치판에 들어와 보여준 것이라고는 헛발질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철수는 한때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은 ‘안철수 현상’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새 정치’는 추상에 머물렀을 뿐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가 없었고 누구에게 분노하고 누구를 대변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가치와 철학이 채워지지 않으니 말은 겉돌고 공허했다. 전쟁터에 나왔으나 왜 출정했고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를 모르는 장수와 같았다.
문제는 안철수의 불행이 그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야권의 패배를 넘어 자칫 정치지형까지 심각히 왜곡시킬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총선에서 야권 참패는 기정사실화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안철수 탈당이 가시화되기 이전에 “총선 180석 보장”을 자신했다. 목표치를 더 상향해야 한다는 전망은 그냥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야권 분열에 대한 환멸은 지지층의 투표율 저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20~30대와 호남출신 서울 유권자들의 투표 포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10%내로 당락이 바뀐 선거구는 65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 지지층의 무더기 기권은 치명적이다. 야권 후보 난립으로 인한 여당 후보의 어부지리는 말할 것도 없다.
안철수의 멘토로 알려진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어차피 내년 총선은 안되니 대선을 위해서라도 제1야당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했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서는 대선에선 그런 기회가 오지도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얼마 전 친박 측에서 언급한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시나리오 수준에서 리얼스토리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일부 야당의원을 끌어들일 필요 없이 개헌의결 정족수(200석)를 채우게 되면 허황한 소설로 치부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력과 포용력 부족, 리더십 부재의 문재인이나 좌충우돌로 일관한 안철수나 헛물만 켜게 될 가능성이 많다. 두 초선의원의 속 좁은 리더십이 결과적으로 여당 장기집권의 길을 닦아주는 셈이다. 오죽하면 ‘문안박 연대’의 박이 박원순이 아니라 박근혜라는 웃지 못할 유머가 나돌겠는가.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1997년 대선 때 젊은 개혁 이미지로 단숨에 대선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회창 총재가 대선후보가 되자 탈당해 독자 출마했다. 여권 분열로 500만 표를 가져가는 바람에 김대중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 됐다. 야당으로 말을 갈아탄 뒤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대선 후보경선에서도 떨어지자 탈당했다. 불복, 탈당, 불복을 거듭하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상실했다. 안철수가 바라는 ‘새 정치’가 그런 구태를 밟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권을 향한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당내 정치혁신에 몰두했더라면 소기의 성과를 내고 위상도 높아졌을 것이다.
안철수는 정치에 발을 들어놓으면서 “제가 만일 어떤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의 가장 중요한 좌표는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확장 저지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 안철수가 선택한 길은 그런 다짐과는 거리가 멀다. 야당이 무능하고 무기력하면 집권세력은 오만해진다. 분열해서 정권을 교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철수는 착각에 빠져 있다.
cjlee@hank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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