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정말로 민생법 통과를 바라는 걸까

입력
2015.12.09 20:00

원샷법 거부하는 꽉 막힌 야당

자기 편하고만 대화하는 정부

대통령이 야당과 직접 담판해야

그림 1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의 쟁점법안처리지연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홍인기기자
그림 1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의 쟁점법안처리지연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홍인기기자

일차적으론 대기업의 ‘대’자만 나와도 반사적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야당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어떤 경우라도 대기업은 지금보다 절대로 편해져서는 안되고, 약간이라도 편의를 주는 건 특혜라는 식이다. 진보성향의 야당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더 보호하겠다는 기본발상엔 공감하지만, 모든 기업정책을 대기업 징벌적 시각에서 재단하는 건 낡디 낡은 억지다.

9일 정기국회 처리가 결국 무산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은 그렇게 나쁜 제도가 아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대기업들이 정리 매각 합병 등 사업재편을 지금보다 빨리, 손쉽게, 적은 비용으로 추진할 수 있는 건 맞다. 이걸 꼭 특별한 혜택이라고 해야 한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다.

하지만 이 법이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대규모 사업재편수요가 작은 기업보다는 큰 기업에 더 많기 때문에, 대기업이 주된 수혜자가 될 뿐이다. 또 대기업이 혜택을 본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정말로 특혜소지가 있는 조항은 다 제거됐다. 대상기업은 공급과잉 등으로 구조조정이 절실한 업체로 한정됐고, 행여라도 오너의 사적 이익을 늘리는 수단이 되지 못하도록 경영권 목적에는 활용될 수 없도록 했다. 위반 시 이익환수와 제재장치도 마련됐다. 이 정도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 한국산업 현실을 감안할 때, 충분히 용인될 만한 법안이다.

그런데도 야당은 이 법을 대기업특혜법이라고 주장한다. 정 통과시키려면 재벌(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빼고 중견?중소기업만 대상으로 하자고 한다. 만약 이 법 때문에 중소기업이 피눈물을 흘리고, 골목상권이 대기업 앞마당으로 전락한다면, 몸싸움을 해서라도 법안통과를 저지해도 좋겠다. 하지만 그런 불공정법도 아닌데, 단지 대기업들이 좀 더 편리해진다는 이유로 끝까지 붙들고 있는 야당은 대체 어떤 산업구조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

하지만 꽉 막힌 야당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정부여당, 무엇보다 청와대다. 한국 경제의 미래, 청년들의 일자리가 달린 그토록 시급한 민생 법안이라면서 정작 국회통과를 위해 얼마나 절실한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다.

원샷법 주무장관인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9일 오전 새누리당 친박계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 참석해 이 법의 정기국회 내 통과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친박계 의원들이면 어차피 정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일 텐데, 정기국회 폐막 당일 이 법을 어떻게든 통과시켜야 하는 절박한 심정이었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야당의원들을 만났어야 했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열 번, 스무 번이고 찾아가서 매달려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압박 발언이 거세질수록 법안통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분위기다. 지난 7일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지시반, 당부반으로 노동관계법과 원샷법, 서비스기본법 등 쟁점법안 처리를 독려했는데 사실 만나야 할 사람은 야당 지도부였다. 처리하지 못할 경우 “선거 때 얼굴을 둘 수 없는”(7일 여당지도부 회동) 그런 중대 법안이라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회냐”(8일 국무회의)고 야단만 칠 게 아니라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이 된”(8일 국무회의) 야당 수뇌부를 직접 만나 언성을 높여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담판을 지었어야 했다.

어느 나라든 법안처리를 둘러싼 여야간 공방과 힘겨루기는 있기 마련이다. 미국도 예산안이 시한 내 통과되지 못해 연방정부가 폐쇄(셧다운)직전까지 가는, 때론 실제 문을 닫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다만 우리나라와 다른 건 이 무렵이 되면 대화 테이블이 의사당을 떠나 백악관으로 옮겨지고, 대통령과 다수당 소수당 지도부가 계속 만나 협상을 이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어차피 가장 맘이 급한 사람은 국정 총책임자인 대통령인데, 야당과 만나는 게 뭐 그리 어려울 까. 그래서 생긴 궁금증이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정말로 원하는 게 이 법의 통과인지, 아니면 야당에 대한 공격인지.

이성철 국차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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