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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文ㆍ安의 지긋지긋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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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감 공유에도 접점 없는 두 사람
3년 전 대선후보 단일화 진통 재연
서로 배려 존중하며 돌파구 찾아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일 기자회견에서 “이제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내자”고 말했다. 당내 갈등과 내홍을 더는 못 참겠다는 선언이다. 사흘 뒤 안철수 전 공동대표도 말을 받아 “말씀대로 지긋지긋한 상황을 이제 끝내자”고 했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상태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한 셈이다. 문 대표 말대로 국민들도 야당 상황에 진저리를 내고 있으니 어떤 방향으로든 결판을 내야 할 순간이다.
두 사람은 똑같이 박근혜 정부의 독주에 대해서도 절박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문 대표는 “박근혜 정권의 심각한 민주주의 퇴행”을 막지 못하고 당내 분열만 계속하는 것은 “국민과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는 “박근혜 정권의 폭주”를 견제 못하면 한국 민주주의는“암흑의 길로 빠져들고 말 것”이라고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렇게 상황인식과 위기의식을 공유한다면 서로 힘을 모으는 방향으로‘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내야 당연한데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문 대표는 안 전 대표가 제안한 혁신전당대회를 ‘분열과 대결의 장’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마이웨이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이에 안 전 대표는 혁신전당대회 거부 재고를 요청하면서도 “저와 함께 당을 바꿔나갈 생각이 없다면 말씀해 달라”고 했다. 문 대표의 호응이 없으면 갈라서겠다는 최후통첩이다.
야당이 분열된 채로 내년 총선을 치르면 결과는 뻔하다. 최근 정당지지도와 투표율 추세, 보수화 경향 등을 감안하면 새정치연합이 80석을 얻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새누리당은 180석을 넘어 개헌선인 200석 이상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표가 아무리 좌고우면 않고 총선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한들 별반 달라질 게 없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 사람은 잘 안다. 바로“국민과 역사에 죄를 짓는”결과가 된다.
두 사람이 각자의 관점에서 내세운‘지긋지긋한 상황 끝내기’ 방법론이 팽팽한 상황에서, 섣부르게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훈수할 입장은 아니다. 그만큼 야당이 처한 상황이 복잡하고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쪼잔한 정치를 보며 YS, DJ시대의 대범한 경쟁과 협력 정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강고한 지역기반 등 정치여건과 시대상황이 다르다 해도 두 사람이 국민의 관심을 끌고 감동을 주는 소통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두 사람이 밀고 당기는 양상은 2012년 대선 후보단일화 과정을 다시 보는 것 같다. 당시 안 후보는 문 후보가 단일화 최종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전격 사퇴를 선언해버렸다. 후보단일화는 이뤄졌지만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는데 실패했고 결국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협상에 임했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책임의 경중을 따진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누구보다 정권교체 열망이 강했을 텐데도 마음을 못 비운 문 후보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 문 대표는 안 전 대표에게 당 혁신위원장을 제의했지만 거절 당했고 문ㆍ안ㆍ박연대 역시 거부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나 정치적 리스크가 큰 제안을 하면서 사전사후에 진심을 갖고 설득하는 과정은 없었다. 혁신전당대회 제안을 거부하면서 뒤늦게 10대 혁신방안은 수용한 것은 오히려 안 전 대표의 마음을 더 상하게 했다.
안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독주와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늘어남에도 그 분노가 제1야당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감동과 파격이 있어야 국민들의 관심을 되돌릴 있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두 사람이 시쳇말로‘형님 먼저, 아우 먼저’식의 배려와 양보 없이는 어떤 이벤트나 파격에도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한 사람은 최후 통첩을 날린 뒤 지방 칩거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은‘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는 싯귀로 ‘상한 영혼’을 달래고나 있으면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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