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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리과정 예산 언제까지 땜질 처방만 할 건가

입력
2015.12.03 20:00

내년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 보육교육) 예산 문제가 또 미봉책에 그쳤다. 3일 본회의를 통과한 새해 예산안 중 누리과정 예산은 국고로 편성되지 못한 채 예비비로 3,000억원을 우회 지원하는 식으로 정리됐다. 지난해와 같은 지원방식으로 금액만 2,000억원 가량 줄었다. 그마저 ‘학교 재래식 변기 교체와 찜통교실 해소 등을 위한 시설비’ 명목이다. 영ㆍ유아 무상보육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버린 꼴이다. 언제까지 이런 식의 땜질 처방을 계속하겠다는 건지 한심하고 답답하다.

정부가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해서 내년 누리과정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전국 17개 시ㆍ도교육청에서 내년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에 필요한 예산은 2조1,000억원이다. 나머지 1조8,000억원은 지방교육재정에서 알아서 쪼개 쓰라는 것인데, 당연히 각 교육청은 난색이다. 당장 전국 시ㆍ도교육감협의회는 “지방채가 18조원이 넘어설 만큼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교육청 재원으로는 충당하기 어렵다”며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했다.

지금의 상황은 보육현장을 볼모로 정부와 시ㆍ도교육청이 치킨게임을 벌이는 형국이지만 더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누리과정 무상보육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0~5살 보육 및 교육은 국가가 완전히 책임을 지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런데 정부와 새누리당은 임기 첫해부터 3년 내내 약속을 파기하고 시ㆍ도교육청에 부담을 떠넘겼다.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아예 법을 바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재정 의무지출 항목에 포함시켰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에 불안을 느낀 학부모들이 대거 유치원에 몰리면서 전국 유치원 곳곳에서 전례 없는 입학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공립유치원의 경우 10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로 과열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제 실시된 서울 지역 공립유치원 추첨에서는 당첨자의 환성과 탈락자의 한숨이 뒤섞여 마치 대학 합격자 발표날과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가 저출산 문제다. 보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저출산 현상이 해소되기 어렵다. 누리과정 예산은 단순한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조만간 닥칠 인구절벽의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추진돼야 할 정책이다. 정부가 남의 일처럼 내팽개쳐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정부가 애 낳으라 말만 하고 이렇게 유치원조차 들어가기 힘들게 하면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냐”는 한 유치원 추첨 탈락자의 푸념을 정부는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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