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호의 매체는대체] 시위 폭력을 예방하는 방법

입력
2015.11.29 10:06

큰 시위가 있고 폭력 상황이 발생하면, 익숙한 백가쟁명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오랜 공안통치의 관성으로 엄벌을 주장하고, 누군가는 폭력이 시위의 메시지를 가리는 점을 걱정한다. 선진국에서는 총으로 쏴버린다는 게으르고 선명한 도시전설을 반복하며 눈 먼 지지를 모으는 이도 나오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에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논의의 격렬함에 비해서, 지향할 바는 모호하지 않다. 애초에 시위란, 어떤 주장을 하고자 모일 정도로 간절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사회와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민주제의 정상적인 발언 및 조직화 기능이다. 그런 민주적 기능이 폭력으로 비화되지 않고도 수행될 수 있는 여건의 조성이 필요한 것이다. 헌법적 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 교통법 같은 제도 정비가 당연히 최우선이지만, 밑바탕이 되어주는 것은 사회적 담론이다. 즉 뉴스 미디어 역할을 하는 언론사와 개개인들의 몫이다.

첫째 여건은, 시위로 모여서 내놓는 목소리를 담론의 영역에서 정상적으로 소화해내는 것이다. 사안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사람들이 분개하며 차벽 너머 청와대로 행진하자고 외칠 동기도 줄어든다. 주장된 내용은 무엇이고 그 주장들이 나온 맥락은 무엇이고, 함의와 평가는 어떻게 토론되어야 하는가. 그 목소리가 시위라는 형식을 취해야 할 만큼 주변화되어 있는 것은, 너무나 말도 안 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부당하게 소외되었기 때문인가. 10만 명이 모이는 바람에 교통이 막혔다는 소식보다, 그 10만 명이 내놓은 목소리가 도대체 무엇인지가 백 배 가치 있는 뉴스 소재다.

더 근본적인 둘째 여건은 바로 시위라는 형식 자체를 부정적으로 포장하는 후진적이고 사회 파괴적인 인식을 몰아내는 것이다. 시끄러움을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여러 입장을 이성적으로 추리고 조율하여 사회적 합의를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굳이 민주제 같은 고급스러운 제도를 고집하는 이유다.

하지만 훨씬 표면적 층위에서 봐도, 시위 중 폭력이란 갑갑한 분노가 고조될 때 더 쉽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용 이전에 발언권 자체를 위헌적인 시위 불허 조치로, 차벽으로, 조건반사적 폭도 낙인으로 원천봉쇄 당하는 것만큼 갑갑한 노릇이 없다. 시위의 정당성을 인정해준다고 해서 폭력이 완전히 사라질 리는 없지만, 시위의 정당성조차 부정하는데 어떻게 우발적 극단화를 예방하겠는가.

질서 유지를 외치는 경찰조차 “여러분들은 시위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전제하지 않으면 경을 치르고, 시위를 테러에 비견하는 정치인은 사과할 때까지 십자포화를 맞으며, 시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설익은 훈계를 하는 매체는 진지한 논의에서 퇴출되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 담론 환경을 만드는 것은 민주제를 받아들인다면 보수든 진보든 뭐든 공유할만한 지극히 정상적인 지향점이 아닐까.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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