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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시위도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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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해선 당초 시위목적도 달성 못해
상투적 방식 대신 열린 소통의 場으로
보수진보 떠나 우리 사회 진화를 위해
토요일 늦은 오후, 지인의 경사를 축하하려 도심에 어렵게 당도했을 때부터 불안했다. 숭례문서부터 광화문 근방까지 둘러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젖은 길바닥 도처에서 섬뜩한 문구의 유인물들이 밟혔다. “X발, 여기서 이럼 뭐해? 가서 본때를 보여 줘야지.”떠나면서 뒷전 누군가의 고함이 내내 걸렸다. 그러더니, 어김 없었다.
과격시위니, 과잉진압이니 30여년 전 초임기자 때부터 지겹도록 봐온 논쟁이다. 그때야 물론 과잉진압이었다. 백골단의 무자비한 폭력, 군중 몸통을 겨냥해 난사해대는 최루탄은 가히 공포였다. 시위대의 벽돌과 화염병조차 이 야만적 선제폭력에 대한 갸날픈 방어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예민한 문제지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 이 양태는 좀 바뀌었다. 전쟁 같았던 노무현 때 평택 대추리 시위를 떠올려보라. 아무리 완강한 박근혜 시대라 해도 멀쩡한 시위대에 선공의 부담을 감수할 간 큰 진압지휘부가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시간상으로도 신고영역 이탈과 군중의 흥분, 강경 혹은 과잉대응이 순서일 것이다.
양비론 버리고 한번쯤은 시위문화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작심한 차에 덧붙이자면, 차벽 자극 주장도 공정치 않다. 어차피 차벽은 신고지역 외곽이고, 시위대가 밧줄 등 돌파용 장비를 다수 준비한 것으로 보아 누군가는 처음부터 ‘상황’을 상정하고 있었다는 게 논리에 부합한다. 어쨌든 물대포 직사자를 포함한 양쪽 위법행위자를 찾아 엄중 처벌하면 될 뿐, 결론 없을 논쟁은 부질없다.
할 얘기는 따로 있다. 양태에 주목하느라 간과했던 집회시위의 효용에 관한 것이다. 집회시위의 원래 목적이 집단의 주장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 공감을 넓히자는 것일진대, 이 방식이 지금에도 과연 예전처럼 유효한가 하는 점이다.
이런 식의 대면(對面)방식은 독점적 정보공급원이었던 신문방송에 재갈이 물려진 독재시대에나 유효했던 방법이다. 인터넷 디지털공간에서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실시간 전파되는 정보사회에서는 효과적인 일상 설득기법의 개발이 훨씬 나은 방법이다. 이성과 감성을 건드리는 글, 영상 등을 통해 무심한 국외자를 끌어들이고 심정적 동조자를 넓히는 방식과 전달수단은 널려있다.
그래서 지금의 시위는 집단의 내부결속력과 인식을 강화하거나, 조직의 존재증명 정도로서의 효용에 그친다. 이래서는 제 이해 밖의 일에 관한 한 작은 성가심도 참으려 들지 않는 일반대중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만 내기 십상이다. 여기에 과격성마저 얹히면 현장을 지나는 일반대중과의 괴리는 더 커지게 된다. 이게 정확한 현실이다.
국민저항권을 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헌법질서의 교란과 파괴에 맞서되 다른 수단이 없는 경우 등 성립요건이 엄격한 개념이다. 탈헌법적 체제였던 5공까지의 군사정권 하에서는 체제저항권이 성립하되, 민주화 후 대체로 개별정책(더욱이 국민 간에도 의견이 갈리는)에 대한 반대로는 저항권 명분이 성립하기 어렵다.
결국 공감과 동조를 위해서는 집회시위 전략을 새로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장을 전투공간이 아닌, 열린 참여공간으로 만드는 게 관건이다. 과격성은 깨끗이 청산하고, 지나는 누구든 편안하게 기웃거리면서 얘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수긍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정체 의심스러운 전문 시위꾼들을 분리하고 논리와 놀이에 능한 이들을 집회의 중심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게 물리적 광장을 최대로 활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집회시위야말로 가장 극적인 소통의 방편이다. 정권이 꽉 막힌 불통으로 치달을수록 반대쪽은 더더욱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 생각 다른 행인들을 불안하고 피하게 하면서 제 목소리만 높이면 비판하는 불통대상과 다를 게 뭔가.
정권이 퇴행하고 있다면 누군가는 앞서 시대를 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보수진보를 떠나, 우리사회의 진정한 진화를 위한 것이다. 시민사회라도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촌보도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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