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유대인 정착촌 제품에 원산지 구분 시행 이유는

입력
2015.11.1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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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유대인 정착촌이 불법임을 소비자에게 알리려는 조치

이스라엘 “정착촌 피해 연간 5,000만 달러, EU와 대화 중단”반발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1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상점에 전시돼있다. 예루살렘=EPA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1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상점에 전시돼있다. 예루살렘=EPA

유럽연합(EU)이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이 원산지임을 알리는 표지를 제품에 부착하도록 의무화하자 이스라엘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EU는 이날 이스라엘 업자가 요르단강 서안 등 유대인 정착촌에서 생산한 제품을 EU에 판매하려면 원산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별도의 표지를 부착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EU의 이번 지침 결정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은 팔레스타인과의 영토 분쟁지역으로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EU는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골란고원 등에 만들어진 유대인 정착촌을 국제법상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유대인 정착촌에서 생산된 제품은 원산지를 이스라엘로만 적지 못하고 정착촌에서 생산됐다는 별도의 표지를 부착해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영국과 벨기에, 덴마크는 이미 요르단강 서안에서 생산되는 과일과 채소에 별도의 표지를 부착하고 있다. EU의 이번 지침으로 EU 28개 회원국 모두가 별도의 표지 부착 조치를 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 정착촌에서 생산되는 상품에는 정착촌을 의미하는 ‘made in settlements’라는 표지가 부착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EU의 결정이 유대인 정착촌 문제에서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준 ‘차별적 조치’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EU의 이번 지침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고조되던 유혈 폭력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요르단 서안 지역에서 약 2만5,000명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번 조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정착촌 생산 제품에 원산지를 이스라엘로 표기할 수 없게 되면서 연간 약 5,000만달러(약 576억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이스라엘 주재 EU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한편 향후 수주일간 EU와의 외교적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EU의 부당한 정치적 압력에 저항하겠다는 뜻도 밝혀 앞으로 표지 부착 문제를 두고 EU와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워싱턴을 공식 방문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EU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백 건의 영토분쟁에 대해서는 유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결정은 위선적이고 이중적이다”라고 비난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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