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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우리도 ‘조지프 나이’가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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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 눈에 띄는 공직 인사가 있었다. 인사혁신처가 이동규 서울대 기상학과 명예교수를 기상청 수치모델연구부장으로 영입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32년 간 교단에 섰다가 2010년 정년을 맞은 학계 원로다. 지난해부터 ‘민간 헤드헌팅’을 시행 중인 인사혁신처는 “기상청장을 해도 모자랄 분”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이 교수가 부임한 자리는 고위공무원단 나급으로 2급에 해당한다. 고희를 맞은 노교수가 국장급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선했다. 으레 중견 교수 출신은 장ㆍ차관이나 공공기관의 장으로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풍토이기 때문이다.
외국과 비교해도 우리 사회는 공직 진출 시 주어지는 ‘교수 프리미엄’에 거품이 많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국제관계 학자들과 정책 담당자들이 미국 외교정책에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으로 꼽는 석학이다. 그는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인 1977~79년 국무부에서 안보ㆍ과학ㆍ기술담당 국장,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94~95년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역임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외교정책의 뿌리인 ‘스마트파워’ 이론 주창자인 그는 지금도 외교정책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프로필엔 흔한 장관 경력이 한 줄도 없다.
교수가 자신의 전문성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바로 장관이나 공공기관의 책임자로 임명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차관보 이하의 국장 또는 과장급 실무를 먼저 맡는다. 한국계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2년 반 동안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국장을 지내다 지금은 다시 교편을 잡고 있다.
우리는 사뭇 다르다.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가 눈에만 잘 띄면 장ㆍ차관이나 공공기관의 장으로 신분이 수직 상승하고, 총선 공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다. 대선 후 논공행상이 이뤄지면 캠프 출신 교수와 청와대 인사담당자는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인다. 대체로 교수 쪽이 더 높은 공직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과잉 대접’을 받고 있지만, 막상 교수 출신 각료나 기관장이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정치인에 가까웠던 조순 이수성 정운찬 전 총리 등을 제외하면 70년대 우리 경제의 압축성장을 이끈 남덕우 전 총리, 김영삼ㆍ노무현 정부에 걸쳐 두 차례 교육부 장관을 지낸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를 손에 꼽는 정도다. 이론은 강해도 실천적 대안과 방법론에는 약해 대개는 관료들에게 휘둘리고, 자존심과 아집을 내세워 조직과 불화만 일으키고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됐다가 제자 논문 표절과 연구비 부당 수령 의혹 등으로 낙마한 김명수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중앙대에 대한 특혜 제공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그 흑역사에 한 획씩 얹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소용돌이 속에 경질된 김재춘 교육부 차관이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대선 캠프 출신으로 장관보다 더 적극적으로 국정교과서 전선에 나선 그는 2009년 대표 집필한 논문에서 “국정화는 독재 국가나 후진국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결론 내렸던 사실이 드러나 결국 하차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을 넘어서 학자적 양심과 소신마저 꺾는 ‘영혼 없는 폴리페서’의 세계도 있다는 걸 그는 보여주었다.
이쯤 되면 우리도 공직 사회로 교수를 충원하는 방식을 리모델링 할 때가 됐다. 우선 더 이상 공직이 교수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전리품이 되도록 놔둬선 안 된다.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도 교수들이 공직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과장이나 국장에서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수로서 전문성을 국가 정책에 구현하고, 정권이 바뀌거나 소임을 다하면 대학으로 돌아와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학문 세계를 넓히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해봄 직하다. 그러려면 제2의 이동규, 처음에는 국ㆍ과장도 마다 않는 조지프 나이들이 용기 있는 도전에 나서야 한다.
사회부 김영화기자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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