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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교과서 국정화 왜 이리 급하게 몰아붙이나

입력
2015.11.03 20:00

행정절차도 얼버무린 속전속결 질주

국정 전환 명분, 여전히 설득력 약해

친일ㆍ독재 미화 않는다 약속 지켜야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강행했다. 당초 5일로 예정됐던 일정을 이틀 앞당겼다. 국정화 반대 여론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자 논란을 서둘러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올 법 하다. 애초부터 국정화를 기정사실화해놓고 여론수렴 절차는 요식행위로 진행시켰다고 밖에는 달리 보기 어렵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담화문 등을 통해 국정화 결정의 배경과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황 총리는 “기존 교과서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돼 현행 검정제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국정화의 필요성을 밝혔다. 하지만 직전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박근혜 정부 초기에 국편이 검인정 작업을 끝냈을 때 청와대에서 가져가 열흘 간 검토했다”고 말했다. 청와대까지 검토한 뒤 나온 검정교과서를 이제 와서 폄훼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설혹 일부 좌편향 논란이 있음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검정제를 폐지하고 시대착오적인 국정화로 전환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초기에 팽팽했던 국정화 찬반 여론이 근래에 반대 쪽이 훨씬 높아진 이유도 정부와 새누리당의 무리한 색깔론 공세 때문으로 보인다. ‘학생들이 주체사상을 배운다’거나 ‘6ㆍ25전쟁 책임이 남한에도 있는 듯 기술했다’는 식의 왜곡된 주장이 역풍을 맞았다. “사실이라면 이런 교과서를 검정해준 교육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에 아무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황 장관이 브리핑에서 “행정예고 기간 많은 분이 적극 의견을 제출했는데 그 건의내용은 교과서 개발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도 적절치 않다. 행정예고는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 정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는 제도다. 반대 여론이 많다면 예고된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게 원래 취지일 텐데 그런 얘기는 없고 교과서 내용에 반영한다는 건 사안을 비껴가는 것이다. 정부는 의견 접수방식을 그 흔한 전자메일을 배제한 채 팩스와 우편으로 한정하더니 팩스마저 꺼놓은 사실도 드러났다. 기본적 절차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셈이다.

국정화에 대한 국민의 의사는 분명하다. 국정화 집필 거부, 또는 국정화 반대 의사를 밝힌 교수는 170여 개 대학 2,700명에 이른다. 진보ㆍ보수를 아우르는 28개 역사학회가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다. 초ㆍ중ㆍ고교 교사 2만7,000여명이 국정화 반대 선언에 실명으로 참여했고, 대학생과 청소년, 일반 시민들까지 집회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으나 도리어 국가와 국민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

정부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는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행태를 보면 신뢰가 가지 않는다. 행정예고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절차조차 대충 얼버무린 정부가 교과서 내용을 정권 입맛에 맞게 재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부가 강조했듯이 국정화에 정당성이 있다면 왜 이렇듯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이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속전속결식 처리가 오히려 국정화의 당위성을 훼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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