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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편가르기 정치’의 치명적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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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2003년 자신이 세운 정의개발당(AKP)을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해 49세에 터키 총리가 됐다. 오랜 군사통치에 짓눌려 있던 터키에서 에르도안은 민주화와 현대화의 희망을 소생시킨 인물이었다. 그는 탈종교적 군부와 이슬람 전통에 깊이 물든 터키국민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유럽연합(EU)가입을 추진하고 쿠르드 민족과 화해에 나서 터키를 진정한 민주국가로 이끄는 지도자로 평가 받았다. 2012년까지 집권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64%, 1인당 GDP는 43%나 성장하는 경제부흥을 달성하기도 했다.
역사에 남을 터키 지도자가 되기에 충분했던 에르도안이 변하기 시작한 건 2013년 전후다. AKP 당헌상 총리 4연임을 금지하는 조항 때문에 더 이상 집권이 어려워지자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총리의 권한을 대통령에게 대폭 넘기는 개헌을 추진했다. 그 결정적 고비가 올 6월 총선이었는데 AKP는 과반 달성에 실패했고, 에르도안은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선거 패배를 맛봤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조기총선을 밀어붙여 마침내 지난 1일 과반 탈환에 성공해 장기집권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에르도안은‘선거의 달인’의 면모를 발휘했는데, 비결은 적을 만들고 공격해 지기기반을 결집시키는 ‘편가르기 정치’다. 우선 AKP의 비판적 지지세력이던 시민사회를 적으로 돌렸다. 비판적 언론사 소유주를 억압하기 시작하더니, 언론인에 대한 테러도 서슴지 않았으며, 지난해에는 SNS가 비판언론의 중심이 되자 ‘댓글 부대’를 동원해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다. 권위주의적으로 변해가는 에르도안에 대한 누적된 불만은 결국 2013년5월 이스탄불 도심의 ‘게지 시위’를 통해 터져 나왔다. 직후 그가 직접 연루된 부패스캔들이 연이어 터졌지만, 위기감을 느낀 보수층의 결집으로 지난해 8월 직선을 통해 대통령이 되는 데 성공한다.
올 6월 총선에서 패배한 후 그가 또 꺼내든 ‘편가르기 정치’의 희생양은 쿠르드 민족이다. 올 7월 에르도안은 3년간 진행해온 평화협상을 일방적으로 결렬시키고 쿠르드 반군의 근거지에 공습을 시작해, 터키를 내전상황으로 몰고 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터키군은 시리아 국경을 넘어 시리아 내 쿠르드 민족까지 공격하고 있다. 보수층에게 ‘쿠르드=테러집단’이란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계산이다. 이 도박이 성공해, 쿠르드계 인민민주당(HDP)은 이번 선거에서 의석이 59석으로 줄었다. HDP는 6월 총선에서 사상 처음 80석 의석을 얻으며 AKP 과반 실패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줄어든 의석이 고스란히 AKP로 간 것으로 분석된다.
에르도안은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터키ㆍ쿠르드ㆍ수니파ㆍ알레비종파가 화합하는 중동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떠오르던 터키를 불과 몇 년 만에 갈등과 폭력이 그치지 않는 독재국이자 분쟁국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특히 쿠르드 민족에 총칼을 겨눈 것은 단순히 10월 앙카라 테러로 130명의 목숨이 희생된 것에 그치지 않고, 200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이 터키로 쏟아져 들어오게 만들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큰 부담을 안겼다.
에르도안의 편가르기 정치를 복기하는 이유는 우리 정치상황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편가르기는 현 정부가 현안을 풀어가는 단골전략이다. 대선공약인 ‘무상보육’ 포기 이유를 탁아시설을 이용하는 전업주부 탓으로 돌려 일하는 엄마와 전업주부 사이 편을 가르더니, 그 다음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힘든 탓을 정규직에게 돌려 편을 가르고, 청년실업 문제를 부모세대가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부모 자식간을 갈라 놓으려 했다. 급기야 여당 지도부가 “국정교과서 반대 세력은 북한 지령을 받았는지 수사해야 한다” 말까지 태연하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내년 총선을 앞둔 여당의 편가르기 전략은 보수층을 결집시켜 터키에서처럼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성공이 거듭될수록 국가의 운명은 치명적 처지에 놓이게 하는 것이란 교훈을 에르도안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영오 국제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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