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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이병헌 "대중의 비판? 헤쳐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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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었다. 2013년 ‘지.아이.조2’ 개봉 때 이후 처음으로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 사이 그는 50억원 협박사건과 관련한 소송에 시달렸고 대중은 소송을 부른 그의 부적절한 행동을 백안시했다. 할리우드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와 ‘협녀, 칼의 기억’이 지난 여름 잇달아 개봉했으나 ‘협녀, 칼의 기억’ 제작보고회 당시에만 잠시 취재진 앞에 섰을 뿐이다.
신작영화 ‘내부자들’의 개봉을 앞두고 3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특유의 강렬한 미소로 얼굴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으나 긴장도 서려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인터뷰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첫 질문에 헛기침을 하고선 한참 뒤 “기대되는데요”라고 말했다.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어두운 실체를 그려낸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은 검사, 언론인들과 야합하는 정치 깡패 안상구를 연기했다. 불량기가 넘실거리는 외모로 변신을 시도한 이번 영화에서도 이병헌의 연기력은 여전히 단단하다.
-새 영화 ‘내부자들’을 평가한다면.
“편집본이 여러 번 바뀌었다. 3시간40분짜리 버전이 있었는데 투자사에서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길어 상영 가능하도록 분량을 어찌 줄이고 편집하냐가 관건이었다. 편집 방향을 캐릭터 위주로 가느냐, 사건 위주로 하느냐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캐릭터 위주 편집본과 사건 위주 편집본, 2가지를 제작사와 투자사가 보고선 사건 위주 편집본을 택했다.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고 빠르게 전개되는 편집 효과를 볼 수 있게 됐다. 정신 없이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돼서 좋았다. 다만 캐릭터를 더 재미있게,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장면은 삭제돼서 아쉽다. 안상구가 영화광이라서 고전영화 대사를 많이 읊조리는데 그런 장면이 많이 줄어서 어떤 장면에서는 좀 어색해 보일 수 있다. ‘패션깡패’라는 수식이 붙을 정도로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는 캐릭터인데 이와 관련된 부분도 많이 잘렸다.”
-머리를 기르고 올백으로 한 헤어스타일 등이 파격적이다.
“긴 머리에 올백은 감독님이 영화 촬영 전부터 꼭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나도 해보지 않은 것이라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할리우드영화 ‘케이프피어’의 로버트 드니로가 그런 헤어스타일을 했다고 감독님이 말했다. 정치권의 배신을 당해 손까지 잘린 안상구의 강렬한 느낌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새로운 면을 즐기는 편인가?
“새롭게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하기보다 상황에 괜찮게 들어맞는다는 모양새가 나오면 반기는 편이다. 관객들이 나를 많이 봐왔고, 이제는 더 이상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없을 만한 세월 동안 연기를 했다. 내 캐릭터에서 새로움과 신선함을 사람들이 느끼면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나.”
-오른손이 잘려 왼손으로 라면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오른손잡이라서 먹는 장면 촬영할 때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왼손 젓가락질 연습을 많이 했다. 무식하게 먹는 것도 안상구답다는 생각이 들어 세심하게 젓가락질하지는 않았다. 촬영장에서 아주 많이 웃었지만 안상구의 처량하고 쓸쓸하고 웃기는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여관 통유리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장면도 많이 웃긴다.
“감독님한테 그 장면 찍기 이전에 화장실 벽을 유리로 해달라고 했다. 감독님이 그거 재미있겠다고 했는데 몇 주가 지나고 나서 막상 촬영장 가보니 그렇게 안 돼 있었다. 그래서 내가 ‘통유리로 바꿀 수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미술감독과 상의한 뒤 3시간 정도 걸려서 세트를 바꿨다. 그러니까 갑자기 부담스러워지더라. 스태프랑 배우들이 다 기다리는 데 만약 재미가 없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열심히 연기했다.”
-전라도 사투리 연기를 잘하던데 지금까지 사투리 실력을 아껴둔 것인가.
“아니다. 배우들이 사투리 연기할 기회가 주어지면 기가 막히게 잘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 사투리 연기를 안 해봐서 부담스러웠다. 전라도 출신은 금방 서울 말에 익숙해지니까 사투리가 강하지 않다. 그래서 더 표현하기 어렵다. 내 사투리가 거슬려서 관객이 영화에 몰입 못하면 어쩌지 걱정했다. 꼭 전라도 사투리 써야 하냐고 감독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말로 하면 재미없을 듯했다. 감독님이 전라도 출신 연극인을 소개시켜 주셔서 함께 시나리오를 읽으며 조금씩 감을 잡아나갔다.”
-백윤식, 조승우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조승우씨의 작품들을 몇 편 봤는데 볼 때마다 ‘저 친구 참 좋은 배우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같이 연기를 해보니까, 보통 배우가 아니더라. 참 잘하는 배우구나 생각을 많이 했다. 많이 놀라기도 했다. 조승우씨를 개인적으로 알게 돼서도 좋았다. 백윤식 선생님이야 워낙 연륜이 있으신 분이라 기대를 많이 했다. 하지만 호흡을 맞추기 아주 힘들었다. 상상하기 힘든 뉘앙스가 담긴 호흡으로 연기를 하신다. 그 호흡을 받고 맞받아치기 당황스러울 때가 몇 번 있었다. 내가 뛰어넘을 수 없는 그 분의 힘, 연기 세계인가 생각했다.”
-안상구를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점은?
“오랜 시간에 걸쳐진 안상구의 모습이 나온다. 그가 시대에 따라서 처한 상황이 극과 극이어서 다양한 감정과 스타일을 당연히 염두에 두고 연기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감정은 놓치고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늘 복수의 감정을 가진 깡패 캐릭터이니까, 그 감정을 가지면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영화 속 ‘나한테 왜 이러셨어요’라는 대사가 ‘달콤한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막상 촬영할 때는 ‘달콤한 인생’을 떠올릴 수 없었다. 캐릭터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전혀 무관한 영화니까. ‘달콤한 인생’은 판타지 성격이 강하기에 ‘달콤한 인생’의 정서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조승우가 촬영 현장에서 검사처럼 굴었다고 하는데.
“감독님에게 안상구를 영화 속 쉼표 같은 역할로, 능청스럽고 넉살 좋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런 제안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 연기를 재미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드리브를 많이 했다. 영화 속에서 ‘어이 깡패야’라고 부르는 것도 우장훈 검사 역할을 연기한 조승우의 애드리브다. 그렇게 애드리브를 하게 되면 나도 그 수위에 맞는 리액션을 보여줘야 한다. 자동적으로 거기에 맞게 뉘앙스를 바꾸고 서로 주고 받으면서 영화의 정서가 강해진 면이 있다. ‘콩밥이 몸에 맞는 것 같네’라는 대사도 조승우 애드리브다. ‘안상구라면 이렇게 하겠지’라는 느낌으로 나름 대처를 했다. 우 검사와의 장면은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졌다. 조승우가 어떤 애드리브를 던질지 몰라 준비하고 대처하려 했다. 내가 이렇게 애드리브를 많이 한 영화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상구는 배신을 당하는 역할인데 그처럼 사람을 잘 믿는 스타일인가.
“그런 것 같다. 약간 그런 측면에서 안상구랑 비슷한 면이 있다. 뭔가 다 알고 있는 것 같고, 나름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듯하나 결국 안상구는 다른 사람들에게 당한다. 굳이 따지자면 그런 부분이 나랑 비슷하다.”
-우 검사가 안상구에게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냐’라고 하는데 본인에게 적용한다면.
“늘 똑 같이 해온 대답인데 좋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내부자들’ 촬영시기가 소송으로 한참 힘들 때였는데 집중력을 발휘해 연기한 듯하다.
“(헛기침) 나로 인해서 감독님과 다른 스태프나 배우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자는 마음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내 임무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 고생을 본인도 했을 텐데.
“어차피 연기가 내 일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같이 작업하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갈까 봐 내가 내 역할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부자들’이 대중에게 어찌 다가갔으면 좋겠는지?
“윤태호 작가의 동명원작 웹툰이 워낙 사회성이 짙고 비판성도 강하다. 그런 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영화 출연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재미였다. 2시간 동안 신나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관객들도 보러 오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부자들’ 개봉하면 무대 인사는 할 생각인가?
“그 스케줄은 아직 모르겠다.”
-이병헌에 대중의 반응은 아직 안 좋은데,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갈 생각인가.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협녀, 칼의 기억’의 흥행이 소송 때문에 부진했다고 생각한다. ‘내부자들’의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나 압박감은 어떤가.
“어떤 작품이든 부담감, 압박감, 긴장감이 있었다. 개봉할 때 늘 따라 다니는 것들이다.”
-차기작은?
“아직 확실하게 결정 내린 것은 없다. 출연 검토하고 있는 작품은 할리우드와 국내 쪽에 각각 있다. 한 두 달 안에 다음 작품이 결정될 것이다.”
-촬영 끝낸 미국 영화 개봉시기는.
“‘미스 컨덕트’가 내년 2,3월 개봉할 것이다. ‘황야의 7인’은 내년 가을쯤 개봉할 것이다.”
-아빠가 된 이후 삶이나 배우로서의 일상이 변했나.
“그건 아직 모르겠다. 시간이 더 지나야 알 것 같다. (책임감은 생겼나?) 그 점은 예전과 너무나 달라졌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 15주년을 맞아 최근 재개봉했는데 감회가 어떤가.
“소식 듣고 굉장히 반가웠다. 박찬욱 감독님이 문자메시지를 주셔서 알게 됐다. ‘지금 영화를 또 봤는데 네 연기가 너무 좋아서 내가 놀랬다’는 문자메시지였다. 아주 오래된 작품이라서 ‘갑자기 이 양반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시나’ 생각했다(웃음). 그리고선 재개봉 소식을 알게 됐다. 어느 배우나 그렇듯 옛날 작품이 TV에서 방영되면 얼굴 빨개지고 민망해진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만큼은 지금 청소년이 봐도 촌스럽다고 말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봐도 세련된 영화라 생각한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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