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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칼럼] 스마트폰과의 결혼?

입력
2015.11.03 09:47

2015년 3월 기준으로 아이폰, 블랙베리, 안드로이드 등과 같은 스마트폰 보급률을 보면 한국은 83%로 세계 4위라고 한다. 2012년에 나온 연구자료에 의하면 2025년쯤에는 지구상에서 5억 이상의 사람들이 현재 스마트폰들보다 탁월한, 상상을 뛰어넘는 복합화된 고성능의 스마트폰을 소지할 것이라고 한다.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표현은 오래 전에 등장하였고, 여남소노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이 스마트폰에 밀착되어 함께 생활하는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24시간 자신의 곁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제 ‘스마트폰과의 결혼’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직장, 학교, 집의 침실은 물론 화장실에까지 동행하는 고도의 친밀성을 나누는 파트너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스마트폰과의 결혼’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느 날 대학원 강의시간에 발제를 맡은 A라는 학생이 발제를 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A는 노트북 컴퓨터나 프린트 발제물도 없이 빈 손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저렇게 무책임하게 아무 준비 없이 발제를 하려고 하다니’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그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A는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그것을 보면서 발제를 하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리서치, 치밀한 독서, 그리고 복합적인 비판적 해석을 제시하고, 주제가 담고 있는 의미, 딜레마, 그리고 남아 있는 과제까지 제시한 그의 발제는 ‘준비 안 된 발제’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정면으로 빗겨 나갔다. A가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던 것은 나의 아날로그적 기준들에 그의 행동이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이내 알아차렸다.

후에 나는 A로부터 그의 ‘스마트폰 철학’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그는 발제물을 프린트하는데 드는 종이로 나무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프린트를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고 발제를 한다고 한다. 또한 수업교재들도 전자책이 있을 경우 전자책을 구입하여 스마트폰에 넣고 다닌다. 종이책보다 책값도 저렴할 뿐만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훨씬 지속가능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A의 스마트폰에는 수업 교재는 물론 다양한 장르의 전자책들이 상당수 저장되어 있어서 스마트폰은 언제나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이동 도서관’이며 글을 쓸 수 있는 ‘이동 서재’이다. 나는 그의 스마트폰 철학을 들으며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이 현실에 대하여 내가 가져왔던 아날로그적 편견들을 상당 부분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버스나 전철 또는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무엇인가를 읽고 이들이 종이책을 들고 있지 않다고 해서 ‘진짜 독서’는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일 수도 있다. 학생 A처럼 스마트폰 속에 이동 도서관을 가지고 다니면서 휠씬 더 효율적인 독서를 하고 있거나 또는 웹사이트를 통해서 다양한 다른 세계와 자신을 연결시키면서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스마트폰 독서-저급문화’ 그리고 ‘종이책 독서-고급문화’를 연결시키는 것은 여전히 고급문화-저급문화의 범주를 이분법적으로 위계화시키는 ‘근대적 강박’일 수도 있다.

스마트폰과의 결혼에 대하여 다양한 분야의 이론가들이 나름대로의 찬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한 찬반론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결혼의 성공 또는 실패 여부를 가늠하는 것은 바로 이 결혼의 능동적 주체인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스마트폰의 창조적 차용에 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이 독서를 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르는 단어와 개념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나 개념들이 많이 나올 때 독서에 집중하거나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교실에서 사용하게 하니까 종이책을 읽는 경우에도 학생들이 스마트폰 속에 있는 사전이나 백과사전 또는 풍부한 인터넷 자료를 통해 즉각 어려운 단어나 개념들을 찾아 이해하기에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교육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연구결과에 따른 결론이 모든 정황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날로그적 교육 방식의 한계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하다.

스마트폰의 적극적 활용 가능성이라는 밝은 면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어두운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결혼에서 가장 커다란 어두운 면의 하나는 ‘홀로’의 시간과 공간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다. 많은 이들이 메신저, 카카오톡 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와 자신을 24시간 연결시켜 놓으면서 누군가와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스마트폰과의 과도한 밀착성 때문에 홀로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이 결혼은 파괴적 관계로 고착될 수 밖에 없다.

홀로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사유하는 데 필연적인 것이다. 고독의 시간이란 자기가 자기자신을 사유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다. 한 개별인의 삶에서 사유의 부재는 타자에 의해 조정당하고 이끌려 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도록 한다. 탈정치화와 탈역사화된 삶으로 매몰되기 쉬운 것이다. 고독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이가 타자와 ‘함께 함’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스마트폰이 쉼 없이 연결하는 외부세계와 의도적인 ‘거리 두기’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무수한 이들이 스마트폰과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함께-따로의 철학’을 실천하고 동시에 스마트폰 속에 이동 도서관이나 이동 서재 같은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적어도 그 결혼은 파괴적이 아닌 창의적인 것이 되지 않을까.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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