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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색깔론의 저주

입력
2015.10.30 17:24

1963년 제5대 대선에서 공화당 박정희 후보는 신민당 윤보선 후보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영남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서 야당인 신민당이 우세했다. 윤 후보측은 박 후보의 남로당 활동 전력과 황태성 남파사건을 빌미로 색깔론 공세도 폈다. 그런데 윤 후보측 한 참모가 “대구 경북에는 빨갱이가 많다”고 한 발언이 역풍을 불렀다. 영남주민의 큰 반발을 샀고, 박 후보측 지역주의 조장과 맞물려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윤 후보 지지세력 중 진보성향의 이탈도 불렀다. 결국 색깔론 역풍은 박 후보의 15만표 차 신승에 큰 기여를 한 셈이 됐다.

▦ 유신정권은 1979년 10월4일 김영삼(YS) 당시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당시 공화당측이 내세운 YS제명 사유 중엔 그가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자’같은 모습을 보였고, 김일성과 회담 용의를 표명하는 등 북한의 위장평화공세에 놀아났다는 것도 있다. YS의원직 박탈은 부마(釜馬)항쟁을 불러 10ㆍ26사건의 중요 배경으로 작용했지만 YS도 색깔론의 큰 피해자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YS는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DJ)씨와의 후보 단일화 싸움 등을 거치며 그에 대한 색깔론 공세에 앞장섰다.

▦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무성 대표와 함께 민추협 시절인 1985년 YS의 상도동계 멤버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들도 반독재투쟁 시절엔 정권의 색깔론에 분노했겠지만 지금 치열한 역사전쟁 중엔 국정화 반대 진영을 향한 색깔론 공세의 선봉에 서 있다. 서 최고위원은 북한이 대남선전 매체를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진영에 공개지령을 내렸다며 사법당국에 수사를 촉구했다. 다수의 국민과 상식적인 지식인들을 북한의 지령이나 받는 세력으로 쉽게 규정하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 검정교과서를 지키려는 것이 “적화통일에 대비해서”라는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의 발언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역감정 해소에 노력하라고 뽑아준 지역민의 염원을 외면하고 그와 쌍둥이나 다름 없는 색깔론 공세에 앞장서고 있으니 다음 총선은 포기한 걸까. 아무리 교과서 전쟁에 정치적 생존이 달려있다 해도 최소한의 상식과 양식은 지키는 게 좋다. 막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색깔론의 달콤함에 빠졌다가 색깔론의 저주를 받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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