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대신 수인번호 '7008'… 서울남부교도소 체험기

입력
2015.10.28 20:00

약 3.6평 방에 최대 7명까지 수용

화장실엔 투명 유리로 사고 대비

동료들 의지 삼아 사회 복귀 꿈꿔

교도소 안 수용자들 표정은 밝아

28일 오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진행된 수형자 체험행사에 참여한 본보 김관진기자(왼쪽 뒤)가 저녁 인원점검을 위해 호실 안에서 열을 맞춰 앉아 있다. 법무부 제공
28일 오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진행된 수형자 체험행사에 참여한 본보 김관진기자(왼쪽 뒤)가 저녁 인원점검을 위해 호실 안에서 열을 맞춰 앉아 있다. 법무부 제공
28일 오후 서울남부교도소의 한 호실에서 본보 김관진기자(왼쪽 뒤)가 점심식사로 나온 근대된장국을 먹고 있다. 법무부 제공
28일 오후 서울남부교도소의 한 호실에서 본보 김관진기자(왼쪽 뒤)가 점심식사로 나온 근대된장국을 먹고 있다. 법무부 제공

“배식!”

26일 오후 5시. 저녁식사를 알리는 사동 도우미(교도관 보조 수형자)의 기합 가득한 목소리가 수용동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내 1방(입구 첫 번째 감방)쪽 복도 끝에서부터 밥과 국, 반찬을 실은 배식수레가 ‘덜그럭’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긴장감에 하루를 보낸 탓일까. 수레 소리가 가까울수록 허기는 더했다. 동료 3명과 함께 호실 안쪽 싱크대서 흰색 플라스틱 용기 2개와 반찬용 그릇 2개를 집어 들었다.

기자는 복도 쪽 쇠창살에 붙어 선 채로, 창살 아랫부분에 뚫려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 앞으로 그릇을 가져갔다. 배식수레가 도착하기 무섭게, 이 구멍 안으로 플라스틱 용기 한 개를 밀어 넣어 호실 밖의 사동 도우미에게 전달했다. 사동 도우미가 순두부김칫국을 가득 퍼 용기 안에 담아 건넸다. 쇠창살에 부딪혀 국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제는 국그릇을 받았다. 이어 흰 쌀밥과 꽁치구이, 감자샐러드와 배추 김치를 같은 방법으로 건네 받아 좌식테이블에 깔아 두고는 게눈 감추듯 입 안에 음식을 떠 넣었다.

1인당 두 조각인 꽁치구이에 플라스틱 젓가락이 꽂히지 않았다. 흉기로 사용될 지 모를 철제 젓가락 대신 지급된 수형자용 젓가락이었다. 젓가락을 양손에 한 짝씩 쥐고 꽁치를 해체, 흰 쌀 밥에 얹었다. 겨우 10분 만에 식사가 완료됐을 쯤 한 동료가 말했다. “밥 먹을 때만 시간이 빨리 가네요.” 잠시나마 따뜻한 음식으로 데워졌던 호실 공기가 다시 차갑게 식어버렸다.

800시간은 보낸 것 같은 교도소 안의 격리된 생활. 이제 겨우 8시간이 지났단 사실에 머리 속이 아찔해졌다.

기자는 이날 하루 서울 구로구 천왕동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수형자 체험을 했다. 기자 신분을 가린 채 철저히 수형자로서 대우받고 기존 수형자들과 동일하게 생활했다. 법무부가 교정의 날(10월 28일) 70주년을 맞아 마련한 것으로, 이러한 형태의 수형자 체험이 외부인에게 허락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입 수형자인 기자는 이날 교도소에서 수인번호 ‘7008’번이 적힌 옥색 수의를 입었다. 옥색 수의는 1급으로 관리되는 중요 범죄 수용자가 입는 수의다.

담배와 마약 등을 소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신’을 마친 후, 수형자 1인 몫의 밥 그릇과 수건, 담요 등을 지급받고 ‘수용3동 중층 3호실’로 이동해 오전 10시 30분부터 만 하루의 짧은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마주한 12.01㎡(약 3.6평) 크기의 혼거실(다인실)은 비좁은 자취방을 보는 듯 했다. 5명 수용이 기본인 이곳에는 교도소 사정에 따라 최대 7명이 수용되기도 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방 한 쪽엔 누런 빛의 천으로 가리워진 5칸짜리 관물대와 발광다이오드(LED)TV가 놓여 있고 그 반대편엔 작은 싱크대가 놓였다. 같은 호실 수형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은 변기에 앉았을 때 수형자의 얼굴이 보이도록 투명한 유리가 설치돼 있었다. 화장실에서 발생할지 모를 수형자들의 사건ㆍ사고에 대비, 교도관들의 감시를 위한 것이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교도소 안에서 사회와의 단절된 채 보내는 생활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료했다. 수형자와 교도관 중 하나를 선택해 체험하는 이번 행사에서 기자가 호기롭게 수형자 체험을 선택한 데는 군복무 당시 영창근무를 서며 교도관 업무를 일부 경험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일 안하고 하루 편하게 있어보자’는 꾀가 나서가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기자 역시 수감 반나절 만에 출소가 간절한 다른 보통의 수형자가 돼 있었다. 호실 안에서도 정해진 규율에 따라야 하는 수형 생활은 절대 편하지 않았다. 벽에 기대 잠시 눈을 감은 동료에게 “자세를 바로 하고 앉으라”는 지적이 돌아왔다. 일과 시간 중엔 호실에서 누워 있거나 잠을 잘 수 없었다.

다만 기자와 달리 교도소 안에서 마주친 수형자들은 밝은 표정을 짓고 있어 놀라웠다. 수형생활을 가벼이 여겨 지을 해이한 표정과는 분명 다른 표정이었다. 이들 수형자들은 동료들을 의지 삼아 사회 복귀 후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데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일례로 ‘인성교육’에서 만난 기존 수형자 30여명은 2시간이 넘는 강의 시간 동안 단 한 명도 졸지 않았다. “매력적인 아버지가 돼라”는 강사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자에게도 “(교육에 참여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박수로 격려하기도 했다.

오후 8시30분. 간단한 출소 절차를 걸쳐 교도소를 나설 수 있었다. 교도관들은 일반 출소자에게 하듯 “열심히 사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교도소 한쪽 벽에 걸려 있는 푯말이 문을 나서는 기자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오늘 하루를 견디면 내일이 밝습니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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