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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이 시대를 버텨내는 청춘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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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고시촌 골목은 여느 골목과 참 달랐다. 전국에서 중고서적, pc방, 만화방 수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했다. 골목 마다 독서실, 고시원, 고시식당이 가득했다. 없는 것은 두 가지였다.
나무가 없었다. 그리고 생기발랄한 청년들이 없었다.
청년들은 가득했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단어가 그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다들 누렇게 뜬 얼굴로 조금 더 싼 곳을 찾아 헤맸다. 한 끼에 3,000원하는 고시원 식당도 부담스러워서 2,500원에 양도 푸짐히 주는 곳이 어디인지 정보를 교류했다. 한 병에 몇 만원 하는 화장품은 꿈도 못 꾸었다. 잡지책에 증정하는 샘플 덕에 외국 화장품을 써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당시 막 생기기 시작한 저가 화장품들(미*, 더 페이**)이 어찌나 고맙던지. 골목의 가게는 담배를 낱개로 팔았고(아마 1개피에 100원이었을 것이다. 오해 마시길. 필자는 비흡연자다), 봉지커피도 팔았다(아마 1잔에 200원이었을 것이다).
그런 고시촌에 테이크아웃 커피점이라는 것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했다. 커피를 좋아한 내가고른 메뉴는 늘 같았다. 2,000원짜리 ‘오늘의 커피’. 그 커피는 카페모카일 때도 있고, 카페라떼일 때도 있었다. 당시 달달한 카페모카를 좋아했던 필자는 카페모카가 ‘오늘의 커피’인 날이 무척 운이 좋게 느껴졌다.
20대가 가장 빛나는 시기라는 말이 와 닿지 않았다. 언젠가는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으나, 그 언젠가가 구체적으로 언제인지에 대한 믿음은 없었다. 가장 싼 옷을 입고 가장 싼 화장품을 바르고, 1인분에 1만원짜리 음식은 내 돈으로 사먹지도 못하는데, 어째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불확실한 미래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치열하게는 보내는데, 문제는 이것이 미래를 담보해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저 확률 만을 높일 뿐.
매우 운이 좋게 시험에 합격했고, 소위 말하는 경제적 활동을 하게 되었다. 오늘 동네 산책길에 2,000원 카페라떼를 판다는 집이 눈에 띄었다. ‘맛이 없을거야’라고 생각하며 대형 커피점으로 가다가 발길을 돌려 그 집으로 갔다. 언제부터 내가 싼 커피를 마시는 게 선택이 되었을까. 한 때는 필수였는데.
지금 20대들이 신음하고 있다. 내게는 과거가 되어 버린 그 불확실의 시대를 견뎌내고 있다. 더 싼 음식, 더 싼 옷, 더 싼 커피집을 찾아 다니며 말이다. 그들도 청춘이 아름답다 말하는 어른들을 보면 짜증이 날 것이다. 선택권도 행사하고 싶을 것이다. 어른으로서 더 미안한 것은 그렇다고 그들의 미래가 당장에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청년펀드가 조성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호 가입자가 되어 2,000만원을 기부했다.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이 20억원을 사재로 기부했고,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200억원을 들고 동참했다(1호 가입자의 가입금액인 “2”에 그룹 총수들도 맞춘 건가). 재벌총수들이 가입하는 것을 두고, 이런 저런 해석이 즐비한 듯하다.
팔짱 끼고 비꼬는 것은 쉽다. 그러나 20억원이라는 돈, 200억원이라는 돈은 제 아무리 부자에게라도 큰 돈이다. 기본적으로 현재 청년들의 상황을 긍휼히 보는 맘이 없다면, 제 아무리 대통령이 1호 가입자라 하더라도 쉽게 나올 수 있는 돈은 아니다.
2,000원짜리 커피를 들고 동네 산책을 하는데, 날씨가 좋아서일까? 20대 꽃띠 청춘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우리 동네에 놀러 온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들의 미소가 계속되길 빌었다. 청년펀드에 불입된 금액이 그들의 미소를 지켜주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길 빌었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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