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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8월 세상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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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화가 겸 수필가 천경자씨가 지난 8월 미국 뉴욕에서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1세.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2일 “천 화백의 장녀인 이혜선씨가 8월 천경자 화백의 유골함을 들고 전시실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줄곧 병석에 계셨는데 8월 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이어 “어머니 시신은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고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히 장례를 치렀으며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천 화백은 미국 뉴욕에 머물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이씨의 간호를 받으며 12년 동안 투병해 왔으며, 2014년 11월부터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머물고 있었다. 외부와 접촉을 끊은 천 화백은 의식은 있지만 거동하지 못하는 상태로 알려져 왔다.
미술계에선 천 화백이 길게는 10여 년 전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고,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예술원 회원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씨는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의사를 알 수 없는 예술원으로선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미술 분야 회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천 화백은 1924년 전남 고흥군 출생으로 1944년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했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일했다. 동양화가이면서도 화려한 색채를 활용하고 꽃과 여인을 주 소재로 삼아 그리는 자신만의 뚜렷한 화풍을 개척해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말년의 위작 시비로 큰 상처를 안고 미술계를 떠났다. 천 화백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보유한 ‘미인도’가 자신의 그림이 아닌 위작이라고 주장하며 미술관과 충돌한 끝에 절필을 선언했다. 1998년 그는 결국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딸 이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93점을 반환할 것을 2013년 요구하기도 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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