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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8종 쟁점 비교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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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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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강화된 시기로 평가된다. 일본식 이름을 짓도록 한 ‘창씨개명’, 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매일 참배를 강요하는 ‘동방요배(東方遙拜)’, 식민통치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식민사관 총서인‘조선사’(1932~1940) 간행 등 이른바 황국신민화정책이 강요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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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경에는 중일전쟁(1931년)과 함께 본격화된 일본의 침략전쟁이 자리잡고 있다. 일제는 ‘유럽 열강 통치로부터 해방’이라는 미명하에 동남아시아 각국을 침략했다. 특히 중국대륙 진출 및 태평양전쟁을 위한 군수물자 보급처로서 조선반도를 병참기지화 했다. 군수공장을 지어 광물자원을 빼앗고 한해 쌀 생산량의 50% 이상을 거둬가는 등 광범위한 물자 약탈과 군인, 탄광ㆍ건설 노동자 확보를 위한 무차별적인 징집ㆍ징발도 이뤄졌다. 일본의 우익은 이 시기를 우리나라 근대화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안병직, 이영훈 서울대 교수 등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19세기 이래 조선은 정체의 늪에 빠졌으나 1930년대에 이르러 급속한 경제적 성장이 이뤄졌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전개했다. 이는 조선 후기부터 농업생산력이 증대되고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는 등 우리나라가 이미 자주적으로 자본주의화의 길을 가고 있었으나 일제의 수탈로 방해를 받았다는 학계 주류의 ‘내재적 발전론’과 대립되는 견해다.

여의도연구원은 당시의 시대상을 ▦노동자 계층 성장 ▦위안부 동원 ▦근대적 시간관념 형성 등 3가지 항목에서 주목해 각 교과서의 서술을 비교했다. 미래엔 등 다수의 교과서들은 일제 강점기 일본에 의해 일부 근대화 요소가 전해진 점을 인정하지만, 도시빈민 급증, 강제동원의 피해 등 부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반면 교학사 교과서는 이 시기 산업화의 긍정적 측면도 주목하고 있다.

김승욱 충북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근대화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점은 고루 서술하고 있지만, 제국주의 침탈 및 산업화의 그늘에 대한 내용에선 다소 차이가 있다”며 “식민지배 속 구조적 수탈이 이뤄진 점을 간과하고 이것이 경제발전의 토대가 됐다고 보는 견해는 무리”라고 말했다.

◆근대적 노동자의 탄생에 대한 기술◆

1)미래엔

1930년대 이후 일제가 식민지 공업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노동자의 수는 빠르게 증가하였다. 노동자의 상당수는 ‘막노동자’, ‘지게꾼’, ‘수레꾼’ 등 날품팔이 미숙련 노동자로 도시 빈민층을 형성하였다. 공장 노동자의 경우에도 한국인이 고급 기술을 가진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단순 노동자였다. 이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을 해야만 하였다.(280쪽)

2)교학사

1930년대 이후 공업화가 급진전하면서 노동자 계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3년 8월 검정본: 노동자 계층도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1930년의 조사에 따르면, 175만 명의 임노동자 대부분은 농업 노동, 날품팔이, 가정부, 잡역부 등에 종사하였고, 공장 및 광산 노동자는 6만3천여 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후 중화학 공업의 발전과 대규모 발전소의 건설 등으로 1940년대에는 공장 및 광산 노동자가 100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공장 및 광산 노동자의 1/4정도는 초등 교육을 받았고, 숙련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2014년 발행본: 공장 및 광산 노동자들 가운데 초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숙련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비교적 높은 사회의식과 계층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전시 체제하에서 일본인 관리자와 기술자, 그리고 숙련공이 징집을 당하자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여성들의 삶과 의식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여성들의 학교 진학과 사회 활동이 증가하였다. 한편, 일제도 여성들의 노동을 활용하여 전쟁에까지 동원하고자 하였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의식도 자연히 높아졌다. 특히, 근대 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등장은 여성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큰 자극이 되었다. (283쪽)

총괄: 노동자 계층의 성장 현상에 대한 관점 차이를 확이할 수 있다. 일본인 관리자와 기술자의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지위가 성장했다는 표현에서 보듯 교학사는 노동자 계층의 신분적 변화를 주시했다. 반면 미래엔 등은 숙련노동자는 극소수이고 노동자 대부분이 낮은 임금을 받는 열악한 처우의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했다며 노동자 계급 성장의 한계와 부정적 측면을 주시했다.

◆위안부 동원 시기◆

위안부 동원시기. 미래엔 교과서 삽화
위안부 동원시기. 미래엔 교과서 삽화

1)천재교육

전쟁의 막바지인 1944년에는 강제성을 더욱 강화한 징용제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많은 한국인이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일제는 육군 특별 지원병 제도를 더욱 확대하는 한편, 1943년에는 학도 지원병 제도를 시행하여 대학생들을 강제로 전쟁터로 내보냈다. 이듬해에는 징병제를 실시하여 청년들을 전쟁에 동원하였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40만 명의 한국인이 전쟁터에서 총알받이로 내몰렸다. 젊은 여성들은 여자 정신대 근무령으로 공장 등에 동원되었다. 한편, 일본군은 1930년대초반부터 군 위안소를 운영해왔으며, 중ㆍ일 전쟁 이후 이를 더욱 조직화하여 일부 여성들을 전쟁터로 보내 성 노예 생활을 강요하였다.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은 전쟁 중 갖은 수모와 고통을 겪었으며,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은 정신적, 육체적 상처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였다.(277쪽)

2)교학사

일제는 1944년 여자 정신 근로령을 발표하고 12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들을 침략 전쟁에 동원하였다. 동원된 여성들은 일본과 한국의 군수 공장에서 일하였다. 일부 여성들은 중국ㆍ동남아 일대ㆍ필리핀 등지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당하였다. (2013년 8월 검정본: 일제는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을 강제로 침략 전쟁에 동원하였다. 동원된 여성들은 일본과 한국의 군수 공장에서 일하였고, 중국과 동남아 일대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당하였다.) (247쪽)

총괄: 우리나라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당한 사실에 대한 서술 분량에서 차이를 보였다. 교학사는 당시 일부 여성이 중국과 동남아 일대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 당했다는 한 문장으로 피해 사실을 설명했다. 다른 교과서는 일본군이 1930년대부터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점, 위안부 피해자가 전쟁 이후에도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점 등을 상술했다.

◆식민지 근대화론◆

1)천재교육

식민지적인 상황에서도 근대 문명의 유입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의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자본주의 사회는 정확한 시간관념을 요구하였고, 특히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이를 더욱 촉진하였다. 총독부는 학교, 공장, 마을에 종을 만들어 달고, ‘시간의 날’을 제정하는 등 시간관념을 심어 주려 하였다.(286쪽)

2)교학사

일제 감정기에 한국인들은 시간 사용의 합리화와 생활 습관의 개선을 일제로부터 강요 받았다. (2013년 8월 검정본ㆍ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은 시간관념과 생활 습관을 바꿀 것을 일제로부터 강요 받았다.) 일제는 시간과 관련하여 ‘음력 대신에 양력을 따를 것, 집무ㆍ집회ㆍ방문ㆍ등하교 등에서 약속 시간을 지킬 것,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생활할 것, 일본의 국가 경축일이나 기념일을 준수할 것’을 강요하였다. 자본주의화의 진전은 더욱 정확한 시간관념을 요구하였다. 학교와 공장은 물론이고 철도, 우편, 전신망 등 교통과 통신의 발달도 정확한 시간관념을 요구하였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지속될수록 근대적 시간관념은 한국인에게 점차 수용되어 갔다. (2013년 8월 검정본ㆍ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지속될수록 수탈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근대적 시간관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282쪽)

총평: 일제 식민통치 미화 논란을 빚었던 교학사의 ‘근대적 시간관념’ 부분은 다른 교과서에도 유사하게 서술 돼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보수 진영이 ‘좌편향’ 이라고 지목했던 천재교육에도 자본주의 사회가 정확한 시간 관념을 요구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의식이 점차 변화돼 갔다는 내용이 기술됐다. 교학사는 일제가 수탈의 효율성 높이기 위해 근대적 시간 관념을 도입하려 했다고 언급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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