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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일상이 된 평가, 국회의원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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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종종 이용하는 카카오 택시에서 내릴 때쯤이면 스마트폰에 ‘ΟΟΟ 기사님의 별점은?’ 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별 다섯 개의 그림과 함께 ‘평가는 익명으로 수집됩니다. 솔직한 후기를 남겨주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다. 며칠 전 한 기사가 메시지 알람을 듣더니 “손님,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눈을 찡긋했다. “이 평가가 중요한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아 그럼요 점수 잘 받아야죠. 평가가 안 좋으면 (콜택시) 멤버에서 빠진다는 말도 들립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좋든 싫든 곳곳에서 누군가를 평가하는 역할을 맡는다. 물건 고치러 서비스센터에 가면 수리기사에 대해 평점을 줘야 하고, 전화 상담을 받고 나면 상담이 얼마나 좋았는지 묻는 메시지나 전화에 답을 해야 한다. 평가 결과를 가지고 상을 주기도 하지만 부득이 정리해고를 해야 할 경우 주요 판단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듯 무한경쟁 시대에 평가는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애를 써야 한다.
그러나 유독 국회의원들은 일상이 되다시피 한 평가를 거부하려 한다. 내년 4월 20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계속 달고 싶은 그들에게 평가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가 진행하는 평가를 통해 현역의원 20%(약 26명)를 공천에서 탈락시키기로 했다. 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공천 관련 혁신안을 당헌ㆍ당규로 확정했다.
하지만 이 평가가 제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다. 평가의 대상인 국회의원들이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게 갖은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국회의원 79명이 며칠 전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당론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이들은 5대 중대범죄자가 아닌 당원이라면 누구나 ‘예선전’ 인 오픈프라이머리에 나서, 경쟁에서 이기면 공천을 받을 수 있게 하자며 공직선거법을 고치자고 주장했다.
언뜻 봐선 누구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더 없이 민주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오픈프라이머리가 정치 신인보다는 지역 유권자들에게 얼굴이 많이 알려진 현역의원에게 절대 유리한 제도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앞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도 ‘결국 현역 의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신의 대권 행보에서 우군으로 만들겠다’는 해석들이 쏟아졌다.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라면 당내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중앙위원회에서 공천 관련 혁신 안을 확정하기 전에 주장할 것을 공천안이 확정된 뒤 느닷없이 꺼낸 것도 석연치 않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부 의원들은 최고위원회에서 공직자 평가를 위한 시행 세칙(구체적인 시험 출제 방식)을 확정해야 하지만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미루게 했다. 평가위원장 인선을 두고도 특별한 대안을 내지도 못하면서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며 ‘트집’만 잡았다.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시간 끌기인 셈이다. 의원 79명의 주장대로 오픈프라이머리가 당론으로 확정되면 평가위원회는 쓸모가 없어지고, ‘현역 20% 탈락’도 물 건너 간다.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을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현역 의원들에 대해 갖는 실망감 때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10명 중 9명은 19대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을 잘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유권자 2명 중 1명 꼴(47%)로 현역 의원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유권자들의 이런 요구를 외면하면 내년 선거에서 이길 확률은 얼마나 될까.
평가는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험생(현역의원)의 할 일은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이다.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 시험 자체를 없애려 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시험 문제가 나오도록 꼼수를 부려서는 안 된다. 그런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바로 국회의원들에 대한 평가를 하고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정치부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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