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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한일정상회담 예비 독법(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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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한일정상회담이 조만간 실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정상회담에 맞춰 양국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2012년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회담 이후 3년반만이다. 1990년대부터 매년 상대국을 오가던 ‘셔틀외교’가 일반 국가관계로 후퇴한 현실을 복원하는 첫걸음이 된다. 그런 만큼 첫 술에 배부르긴 어려울 것이다. 가능한 목표치를 세우고 3년 넘게 무너진 신뢰의 주춧돌을 제대로 쌓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의제 별 전략적 대응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중일간 접촉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올 가을 중국측이 아베 총리의 베이징 방문 조건으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진 3대 요구사항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측은 중일공동성명(1972년) 등 4개 정치문서를 준수하고, 무라야마 담화(1995년)의 정신을 지키며,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밝힐 것 등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한일간에 적용한다면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나 “한국민의 뜻에 반한 식민지배”를 언급한 간 나오토(菅直人) 담화(2010년) 등을 재확인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선언적 해결원칙을 두 정상이 합의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 쪽 일각에선 위안부와 강제징용 ‘주고받기’타결안이 거론된다. 위안부 건은 일본이 전향적 태도로 나오되 강제징용은 한국정부가 알아서 정리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피해자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한국대법원 판결(2012년)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1965년 한일조약으로 문제가 끝났다는 공식입장을 바꾼 바 없어 난감한 처지다.
일본 내 분위기를 보면 우리정부의 어려움이 간단치 않음을 매번 실감한다. 사실 아베 정권은 겉으론 “대화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있다”“정상회담을 꼭 하고 싶다”고 밝혀왔지만 본심은 “한국 방치”란 게 정설이다. 중일관계만 해소하면 한일관계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식인데다, 일본 내 반한 정서 확산으로 아베 정권에 한일관계 개선을 통한 이득이 현격히 줄었다.
과거보다 왜소화된 일본사회의 감정 배출구가 한국 때리기로 이어져 상업적 이익으로까지 연결되는 구조다. 우익매체들은 “일본이 무조건 나쁘다고 해야 지지율에 좋은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받을지 끝까지 햄릿의 고민에 빠져있다”고 조소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에 대한 ‘사죄 피로증’ 운운하는 일본에선 그래서인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기가 높다. ‘김대중ㆍ오부치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년)’을 지목하며 ‘전후 일본의 평화행보를 평가한 유일한 한국대통령’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NHK에 출연해 ‘역사인식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보냐’는 질문에 “그렇다, 한국국민과 나는 이 문제가 더이상 재론되지 않고 양국이 21세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에선 일본문화 개방정책이 추진됐고,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2004년 드라마‘겨울연가’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김대중ㆍ오부치 공동선언’ 당시 도쿄의 풍경이 지금으로선 낯설기 만하다. 한미ㆍ미일동맹 체제에서 중국을 보는 한일간 이해도 달라졌다. 이 때문에 한일이 당시 분위기를 원점으로 다시 출발점에 서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이 일본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듯 이번엔 아베 총리가 한국민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순 없을까. 탁월한 정치감각을 가진 그가 별 기대도 안하는 한국민에게 자신의 말로 반전을 선사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화해외교의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성사될 한일정상회담에서 보고 싶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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