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범 입국 거부…왜 이러나 안타까울 따름”

입력
2015.10.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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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씨가 지난 4월 1일 제주에서 열린 4ㆍ3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공
김석범씨가 지난 4월 1일 제주에서 열린 4ㆍ3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공

“김석범은 해방 전 재일동포들이 가지고 있던 ‘조선적(朝鮮籍)’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경계인’입니다. 남북으로 나뉘지 않은 통일 한국에 대한 꿈을 구순이 되도록 간직한 사람에게 ‘입국 거부’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처사입니다.”

한국 정부가 여행증명서를 발급하지 않아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90)씨의 방한이 가로막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소설가 현기영씨는 14일 이렇게 말했다.

김석범씨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의 침략전쟁이 끝나기 전인 20대 중반까지 제주도에 살았다. 부모의 고향이 제주였기 때문이다. 종전 직전 오사카로 돌아가 거기서 간사이대 경제학과, 교토대 미학과를 졸업한 뒤 30대 중반이던 1957년에 문예지 ‘분게이슈토(文藝首都)’에 ‘간수 박서방’ ‘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동안 30권에 이르는 작품집ㆍ장편소설이 고단샤, 슈에이샤, 이와나미쇼텐 등 일본 주요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그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 일본 문예지에 연재했다가 출판사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서 1997년까지 모두 7권으로 완간한 장편소설 ‘화산도(火山島)’이다. 그의 작품 다수의 소재이기도 한 4ㆍ3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일본 유수의 문예상인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상과 마이니치(每日)문예상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이 작품을 포함한 일련의 작품 활동으로 제주4ㆍ3평화재단이 제정한 ‘제주4ㆍ3평화상’ 첫 수상자가 됐다.

김씨의 이번 방한은 화산도 국내 완역을 기념해 16일 동국대에서 열리는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의 글로컬리즘과 문화정치학 김석범 화산도’ 심포지엄 참석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한국 국적이 없어 방한 때마다 여행증명서 발급을 받아야 하는 그에게 이번에는 증명서를 내주지 않았다. 불과 6개월 전에 제주도를 다녀갔는데도 말이다.

이에 대해 주일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한국 방문에 필요한)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한다는 결정을 내려 지난 8일께 김씨 본인에게 통보했다”며 “김씨가 한국에서 한 반국가적 발언 등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여권법에 따른 조치”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의 반국가적 발언”이란 김씨의 제주4ㆍ3평화상 수상 소감 발표를 말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문제로 삼았을 것 같은 소감의 한 대목은 이렇다. “과연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승만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수 있었겠느냐. 여기서부터 역사의 왜곡, 거짓이 드러났으며 이에 맞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전국적인 반대투쟁이 일었고 그 동일선상에서 일어난 것이 4ㆍ3사건이다.” 당시 시상식장에서 수상 소감을 직접 들은 현기영씨는 “4ㆍ3사건은 남한 단독정부가 아닌 통일정부를 원한 민중봉기였다는 식의 이야기로 별 문제 될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을 문제 삼아 당시 일부 여당 의원과 보수단체ㆍ언론 등이 반발하며 상을 박탈하라고 요구하고 나섰고, 행정자치부 의뢰로 제주도가 수상자 선정에 대한 감사까지 벌이는 소동이 벌어졌다. 결과는 수상자 선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김씨가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기자 지낸 것을 두고 그를 ‘빨갱이’ 취급하기도 한다. 그가 30대에 조선신보기자였던 것은 맞지만 40대 중반 ‘까마귀의 죽음’을 단행본으로 내면서 조총련과 관계를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적’을 고집하는 것은 “북도 남도 아닌 준통일국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씨는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권에서 그의 대표작 ‘순이 삼촌’이 판매금지 당했을 때 김석범씨가 일본어판 번역을 해준 인연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만났다. 이번 동국대 심포지엄에서도 김석범씨와 대담을 할 예정이었다. 현씨는 “‘화산도’는 일본에서 대단히 호평을 받은 소설”이라며 “이 작품을 국내 번역한 것 자체가 큰 기획인데 이런 기획을 당국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씨는 대담 대신 혼자서 30분 정도 제주도의 역사와 김석범 문학 그리고 이번 사태에 대한 소감 등을 말할 계획이다.

동국대 심포지엄은 16일 오전 10시30분 서울캠퍼스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고명철 광운대 교수가 사회를 본 1부 첫 행사가 김석범씨와 현기영씨의 대담이었다. 이어 ▦남북분단 상황과 재일조선인 문학 ▦김석범의 문학세계 ▦일본현대문학에서 ‘화산도’의 위치 등이 발표된다. 행사의 주인공인 김석범씨는 오고 싶어도 못 온 채로.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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