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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마일트레인 탈선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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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국정화 ‘갑자기, 왜?’ 의아
설득ㆍ소통 무시한 ‘깃발의 리더십’
좌우 논란 넘어 추진 행태가 더 문제
다시 소통의 문제다.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이끌고 나가는 게 아니다. 옳다고 여겨 이렇게 하는 것이니 따라만 오라고 한다. 정치적 대척점에 선 야당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칠 수도 있겠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부와 여당에 대해서, 정부와 여당이 국민에 대해서 ‘깃발의 리더십’만 보이고 있다. 이끄는 쪽과 이끌려가는 쪽 사이에 협의와 공감이 없으니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고, 탈선의 위험마저 우려된다.
마일트레인(Mile-Train)이라는 게 있다. 열차 길이가 수 마일(1마일=약1,610m)에 달한다. 미대륙 동서를 달리는 화물열차의 길이는 3마일 정도가 기본인데, 운행을 위해서는 한 대의 기관차로는 불가능하다. 기관차 2대가 함께 끌고 가는 경우도 있고, 앞 중간 뒤 3곳에서 끌고 가기도 한다. 화물열차 노조가 배짱을 부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이들 기관차의 기관사들 때문이다. 기관사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열차 운행이 불가능하다. 서로 속도를 맞추지 않으면 열차가 분리되거나 탈선할 수밖에 없다. 무전기나 워키토키로 서로 소통하며 합의ㆍ공감된 속도와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시간이 급하다고 앞쪽 기관사가 혼자 속력을 낸다면 어찌 되겠는가. 뒤편 기관차들이 호응ㆍ협력하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논란이 일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보자. 이대로 그냥 달려가다가는 촛불시위 정국과 같은 국가정체 상황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내용의 좌우편향 논란보다 박근혜 정부의 추진 행태에 더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앞에서 끄는 기관차가 중간의 기관차들과 협의하지 않고 ‘목적지와 도착시간’만 염두에 두고 혼자 내달리려 드는 모습이다.
국민들이 국정화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언제인가. 지난 달부터 언론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움직임을 추측 보도하면서다. 그러더니 10월1일 새누리당이 불쑥 역사교과서 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고, 불과 열흘 후 정부와 새누리당이 당정회의를 열어 국정화 추진을 논의하고, 이튿날 교육부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발표했다. ‘갑자기, 왜?’라는 의문이 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정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이미 2013년 6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으며, 2014년 초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부연했다. 2년 전부터 국정교과서를 만들자고 했고, 지난 해 초에도 지시했으니 ‘갑자기’가 아니라는 해명이다. 주무부처라는 교육부는 더하다. 황우여 장관이 올해 초 “교실에서 역사를 한 가지로 권위 있게 가르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들며 오랫동안 여론을 수렴을 했다는 듯 말하고 있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두고 정부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야당의 정치공세 차원을 떠나 국민들이 정부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대통령의 소신 표명과 지시 이후, 나아가 교육부 장관의 발표 이후 학부모 학생과 교사를 중심으로 단 한번이라도 공청회나 토론회 등 의견수렴 과정이 있었던 기억이 없다. 쫓기듯 밀어붙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총선을 앞두고 혹은 정권 후반기를 대비하여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략적 의도라는 일부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의 검인정 역사교과서가 문제 없다는 데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박 대통령의 지적처럼 “한반도 통일에 대비한 올바른 역사관을 심기 위한 것”이라면 이런 식의 일방적 이끌기는 안 된다. 진정으로 ‘국민통합을 위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면 통합을 위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국민통합이다’하며 깃발을 들고 흔드는 행위로 국민은 더욱 분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통과 공감을 무시한 기관사의 과속으로 마일 트레인이 탈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정병진 논설고문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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