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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3년 전 합헌 결정 내리면서도 “국정교과서, 사고력 획일화 위험”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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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23년 전 국정 교과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국정교과서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던 사례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헌재는 1992년 중등 국어교사 남모씨가 “교육법 등에서 중등 국어 교과서를 1종 도서(국정)로 정해 교육부가 저작, 발행, 공급하도록 한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남씨가 “국정교과서가 교사들의 교과용 도서 저작ㆍ출판의 자유를 봉쇄하고 주입식 교육만 반복하게 강요한다”고 주장한데 대해, 헌재는 “국민의 수학권 보호 차원에서 학년과 학과에 따라 어떤 교과서는 자유발행제로 하는 것이 온당하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그럴 때는 국가가 관여할 수밖에 없으며, 관여할 헌법적 근거도 있다”는 취지로 결론 지었다.
하지만 헌재는 국정교과서 발행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고 봤다. 헌재는 “국정교과서 제도가 학생들의 사고력을 획일ㆍ정형화하기 쉽고 다양한 사고방식 개발을 억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과서를 국가가 독점하면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무조건 정당하다는 전제가 성립되고 그 외에는 모두 배척하는 풍토가 조성된다”고 우려했다. 또 “새로운 상황 변화가 생기더라도 기존의 결정사항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선호하는 공직사회의 풍토 때문에 교과서 내용의 수정ㆍ혁신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행정부가 필요 이상의 교과서 통제권과 감독권을 갖고 있어 고위관료나 정치가의 견해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한 경우에는 교과서 내용의 경직성을 극복하기가 더 어렵다고도 봤다. 헌재는 이어 “국가가 교과서를 독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에 모순되고 교사와 학생의 교재선택권이 보장되지 못하며, 교과서 중심의 주입식·암기식 교육이 이뤄지기도 쉽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당시 판단 대상이 아니었던 국사 과목에 대해서는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결국 “국정제가 위헌은 아니라 할지라도 교육 이념과 현실에 비춰 볼 때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제도냐 하는 문제는 별개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필요성이 인정되는 예외적 경우를 빼고는 국정제 보다는 검ㆍ인정제가, 그보다는 자유발행제의 채택이 교육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 이념을 고양하고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냈다.
변정수 재판관은 “교사의 교과서 선택권을 완전히 배제하고 중앙정부가 이를 독점하게 한 규정은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독점적으로 교화해 청소년을 편협하고 보수적으로 의식화하는 것이어서 교육의 자주성을 선언한 헌법에 반하고 교육자유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위헌 의견을 밝혔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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