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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력과시 열병식에서 인민사랑 강조한 김정은

입력
2015.10.11 17:40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대대적 열병식을 거행했다. 행사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KN-08을 비롯한 탄도미사일과 300㎜ 신형방사포 등 각종 무기가 줄지어 등장해 북한의 막강한 무력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2013년 정전협정 6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선보인 ‘핵배낭’보병부대도 다시 등장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열병식 실황중계에서 KN-08에 대해 “다종화되고 소형화된 핵탄두들을 탑재한 위력한 전략 로켓들”이라고 소개했다. 개발성공 여부가 미심쩍기는 하지만 북한이 핵탄두 탑재 미사일 개발 등 핵 무력 증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열병식 행사에 1조~2조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 1년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라고 한다. 경제가 어렵고 많은 주민들이 굶주리는 상황에서 전시성 행사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수십만 인력을 동원한 것은 정상이 아니다.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대외 무력과시와 내부 결속 강화로 체제를 다질 필요가 있었겠지만 과거 평양 축전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행사에 투입된 과도한 비용이 경제난을 심화시켜 체제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이날 열병식 연설에서 인민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유난히 강조했다. 25분에 걸친 연설 중 ‘인민’이라는 단어가 90여 차례나 언급됐다. 권력세습 이후 강조해온 애민(愛民) 지도자 이미지 구축의 연장선이다. 그러나 말로만 인민 사랑을 얘기하고 인민의 실질적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 허상이 금방 드러날 수밖에 없다. 열병식 같은 대규모 과시성 행사나 핵개발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현실적인 길을 찾아 나서야만 김 제1위원장의 인민사랑이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한편으로 북한이 이번 열병식을 진행하면서 나름대로 수위 조절을 통해 대외관계 개선 여지를 내비친 것은 다행이다. 김 제1위원장은 연설에서‘경제ㆍ핵 병진 노선’ 대신 ‘경제ㆍ국방 병진 노선’이라고 표현 하는 등 ‘핵’이라는 용어를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다. 남한과 미국을 겨냥해서도 자극적 표현을 자제했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이 열병식 주석단에서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어 눈길을 끌었다. 중국지도부 권력 서열 5위인 류 상무위원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을 방문한 중국의 최고위 인사로 시진핑 주석의 친서를 김 제1위원장에게 전달했다. 그 동안 경색됐던 북중관계 회복의 계기가 될지 주목할 만하다.

당초 우려했던 장거리 로켓발사 등의 대형 도발 없이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가 마무리된 것은 남북관계 진전에도 긍정적이다. 8ㆍ25 남북합의의 첫 결실로 20~26일 금강산에서 이뤄질 이산가족상봉행사도 별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같은 분위기를 살려 당국간 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남북관계 진전에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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