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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슬픈 편견 ‘예쁘면 착하더라’

입력
2015.10.09 15:21

요즘 수요일, 목요일 저녁만 되면 카톡방이 난리다. 각자 방에 틀어박혀 드라마를 보면서 ‘원격’ 수다를 떠느라 바쁘기 때문. 우리를 호들갑 떨게 만드는 그 드라마는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다. 못생긴 척 머리도 볶고 하얀 얼굴에 23호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주근깨를 콕콕 찍은 (실제론 겁나 예쁜) 여주인공(혜진 역,황정음)이 나온다. 예전엔 예뻤으나, 지금은 못생겨진 여주인공 ‘혜진’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주인공 혜진(황정음)은 ‘어렸을 땐 예뻤던’, 그러나 지금은 못생긴 여자다. 혜진은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하고 역변, 그녀의 첫사랑 성준(박서준)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뚱뚱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역변. 혜진 역시 성준의 첫사랑이었다. 성준은 혜진을 찾아 한국에 오지만 혜진은 만남의 장소에서 결국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성준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아서. 그의 미녀 친구 하리(고준희)가 혜진을 대신해 그 자리에 나간다. 그렇게 관계는 꼬이고 꼬이고, 성준은 ‘못생김에 가려진 진짜 혜진 찾기’의 딜레마에 빠진다.

"거울을 바라보니 정말 정말 못생겼네. “ (출처=MBC 방영 화면)
"거울을 바라보니 정말 정말 못생겼네. “ (출처=MBC 방영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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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은 진짜 혜진과 회사에서 아옹다옹하면서 가끔 첫사랑 혜진의 기시감을 그녀에게서 느낀다. 그리고 그 기시감에 그는 혼란스럽다. 10월 8일자 목요일 방영분에선 결국 일이 터졌다. 성준이 성격파탄자처럼 화를 내며 혜진을 해고한다. 그러고 다시 혜진은 회사로 돌아오는데, 이 때 뾰로롱. 폭탄 맞은 파마머리도 아니고, 주근깨도 사라진, 화장을 3단 퍼프 세례로 말끔히 하고 변신에 성공한 혜진이 돌아온다. 그 사랑스러운 얼굴 위로 쫙 음악이 깔린다. “거울을 바라보니 정말 정말 못생겼네~ 못생겼어~ 못생겼네~”

못생겼다고? 못생김이 나노미터 단위로 분해 되서 모공에 숨었나? (출처=MBC 방영 화면)
못생겼다고? 못생김이 나노미터 단위로 분해 되서 모공에 숨었나? (출처=MBC 방영 화면)

나는 안타까움을, 슬픔을 금할 수가 없다. 성준은 ‘못생김이 가린 진짜 혜진 찾기’의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했는데, 여자주인공이 기어코 예뻐져버렸다(?). 마음 졸이며 드라마의 갈등을 지켜봐 온 TV 앞 빠순이로서, 이 ‘변신’이 갈등을 해결하는 초석이 된다면 너무나 슬플 것 같다. 외모 역변의 서사는 항상 딜레마를 가진다. 껍데기를 사랑하느냐, 아니면 그 내면까지도 알아볼 수 있느냐 하는 두 가지 질문이 싸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나 KBS 드라마 ‘미녀의 탄생’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여자주인공은 변신하고, 남자주인공은 사랑에 빠지며, 그 사랑의 장애물은 ‘내가 못생겼을 때도 이렇게 나를 사랑했을까’하는 질문이 된다. 엔딩은 대부분 ‘예쁜 여자’와 ‘그 여자의 내면까지도 사랑하는 멋진 남자’의 결합으로 포장된다. 결국 마음고생하고 변하려고 노력한 건 추녀로 놀림 받던 여자 주인공. 그 여자주인공의 외모뿐인데 말이다. 영화 ‘슈렉’에서 못생긴 늪지 괴물 슈렉을 따라간 피오나 공주의 반전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다.

영화 ‘슈렉’에선 미녀였던 피오나 공주가 슈렉을 따라 초록 괴물로 변한다. (출처= 영화 ‘슈렉’)
영화 ‘슈렉’에선 미녀였던 피오나 공주가 슈렉을 따라 초록 괴물로 변한다. (출처= 영화 ‘슈렉’)

웹툰 ‘외모지상주의’는 잘생기면 뭘 해도 용서되고 못생기면 뭘 해도 비난 받는 ‘외모지상주의’를 그린다. 조각 같은 외모가 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예쁜 외모로 스타 BJ가 되어서 돈을 벌 수도 있다. 나쁜 편견의 시선도 받지 않는다. 에피소드 ‘수련회’편에서는 잘생겼다는 이유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교관과, 못생긴 외모 탓에 사람들이 꺼리고, 범죄자로 오인하는 교관이 나온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 잘생긴 ‘제우스’ 교관은 성범죄자로 수배령이 내려진 인물이었다. 작가는 범죄를 저지르려는 ‘제우스’ 교관의 얼굴을 소름 끼치게 그려낸다.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의 얼굴은 못생긴 얼굴로 표현한다. 짐작하건대 내면의 ‘못생김’이 드러났다는 비유일 것이다. 이 비유가 못내 불편하다. 내면의 ‘못생김’은 얼굴을 못생기게 그려서 드러내야 하는 것일까? 반대로, 얼굴의 ‘못생김’을 보고 내면의 ‘못생김’을 생각하기 때문에 외모 차별이 공공연한 것이 아닌가. ‘외모지상주의’가 보여준 못생김의 서사는 차별을 비꼬려다 차별의 질서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잘생긴 착한 놈? 못생긴 나쁜 놈? (출처=네이버 웹툰 외모지상주의)
잘생긴 착한 놈? 못생긴 나쁜 놈? (출처=네이버 웹툰 외모지상주의)

‘못생김에 가려진 진짜 혜진 찾기’나 ‘잘생김 뒤에 숨은 못된 교관 찾기’는 사람만 보고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일까? 혜진이 애써서 예뻐져야 마음이 예쁜 ‘진짜 혜진’의 모습이 드러나고, 못생긴 얼굴이 되어야 교관의 ‘못된 마음’이 드러난다니. 영화 ‘슈렉’에서 피오나 공주는 초록 괴물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마음 나쁜 초록 ‘마녀’가 되는 건 아니다. 슈렉의 서사에서 외모의 미/추가 마음의 미/추를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냥 행복한 초록 괴물, 슈렉의 아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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