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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사도세자와 이맹희 회장, 그 평행 이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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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사도세자와 이맹희 회장의 평행이론’ 두 번째 편을 적어본다. 오늘은 영조 혹은 이병철 회장의 입장에서 바라본 내용이다.(▶ 1편 다시보기)
1. 제왕이었던 아버지의 선택
아버지는 왕이었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군신(君臣)이자 부자(父子) 관계였다. 아버지는 자식을 생각하는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그리고 백성을 생각해야 했다.
내 아들이 국가에 백성에 해(害)가 되는 존재라고 생각할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을 데리고 도망을 가겠지만, 왕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왕은 대처분을 결정했다. 장남을 말이다. 왕이었던 아버지는 국가와 백성을 선택했다. 영조는 아들 앞에서도 왕이었다.
아버지는 그룹 회장이었다. 이병철 회장과 이맹희 회장은 노사(勞使)이자 부자 관계였다. 이병철은 장남의 이름 가운데에 맏 맹(孟) 자를 주어 삼성그룹의 장남임을 천명했다.
그런 이맹희 회장은 평생을 외국을 떠돌다가 결국 한국에서 숨을 거두지 못 하였다. 열한 살 어린 동생이 이맹희 회장은 집안에서 쫓겨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왜 그리 장남을 그룹 근처에 발도 못 디디게 했을까.
아마도 이병철 회장은 이맹희 회장이 그룹에 해가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그룹을 이끌 능력이 부족했다 여겼다면, 작은 계열사 하나 주고 일감을 주어 지원해 주면 될 일이다. 차남 이창희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이맹희 회장을 내쳤다. 장남을 그룹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그것은 그가 그룹을 해칠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 않은 이상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이병철 회장에게는 장남도 소중했지만, 또 소중한 자식이 있었다. 그것은 그룹이고 삼성의 가족이었다. 삼성그룹의 제왕이었던 이병철 회장은 삼성을 선택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뭔가 이상했다. 사도세자의 비인 혜경궁 홍씨가 천수를 누린 것과 그 아들이 왕이 된 것이 말이다. 조선시대에 세자가 그런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 아내와 자식이 어떻게 여전히 궁의 보호를 받고 심지어 최고 권력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싶었다.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였다면 뭔가 역모에 준할 정도의 큰 죄가 있었다는 것일 텐데, 조선은 연좌제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영조의 비호(庇護)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화 ‘사도’에서도 영조는 사도를 의금부에 넘기지 않고 직접 처단하는 이유가 나라의 일이 아닌 가정사임을 극구 강조했다. 그리고 말한다. “그래야 네 아들이 산다”라고 말이다.
영조는 나라도 지키고 손자도 지키고 싶었다. 아버지는 정치가였고, 무언가를 지키려면 다른 무언가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영조는 사도를 버리기로 결정했으나, 영조는 아마도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손자와 며느리는 최선을 다 해 지켜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혜경궁 홍씨는 천수를 누리며 한중록을 쓸 수 있었고, 이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세손은 왕이 되어 세종대왕과 더불어 조선 최고의 성군이 될 수 있었다.
이맹희 회장의 부인인 손복남 여사는 이병철 회장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같은 집에 살며 시어른들의 수발을 다 들었다. 장손인 이재현 회장도 그 집에서 자랐다. 그 집에 없었던 존재는 장남 이맹희 회장 뿐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장손인 이재현 회장을 애틋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재현 회장이 사회생활을 다른 회사에서 시작하자, 장손을 남의 밥을 먹게 하는 게 말이 되냐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은 안국화재의 지분을 손복남 여사에게 주었고, 손복남 여사가 이를 제일제당 지분으로 바꾸었다. 이는 이재현 회장이 제일제당 현재의 CJ를 만드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병철 회장은 사실 안국화재 지분을 장손에게 주려 했던 게 아닐까.
내 자식이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면 과연 그 손자와 며느리를 끝까지 보호할까. 영조와 이병철 회장은 제왕이기에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손자와 며느리를 끝까지 보호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내친 아들에 대한 사랑을 희미하게 느낄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제왕이었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도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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