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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전문간호사 논쟁 뜨거운데… 눈치보기 급급한 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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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전문의 4824명 배출돼 충분… 마취전문간호사 제도 폐지해야"
"의사 지도 아래 마취행위는 정당… 단독으로 하겠다는 게 아니다" 맞서
의사-간호사들 갈등의 골 깊어져
복지부는 "대안 마련할 것" 미적
마취전문간호사의 마취행위를 둘러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와 마취전문간호사 간 대립이 5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사와 간호사들 간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절충안 마련이 쉽지 않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은 마취전문간호사들의 전문성 부족에다 자격 취득자 수 격감 등을 들어 마취전문간호사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마취전문간호사들은 이에 대해 “마취와 관련 없는 의사들까지 마취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라고 받아친다. 정작 사태 해결의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는 의사와 간호사 사이에서 눈치보기로 일관,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마취전문간호사의 마취행위가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지난 2010년 3월 대법원 판결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대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마취전문간호사 A씨에게 의사의 구체적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마취약제와 사용량을 결정해 치핵 제거 수술을 받을 피해자에게 척수마취를 한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마취전문간호사라 하더라도 마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는 간호사 자격을 인정받은 것뿐이라 비록 의사의 지시가 있었다 해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간호사와 동일하다고 덧붙였다. 마취전문간호사가 의사의 지시나 위임을 받고 직접 마취시술을 한 것은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마취전문간호사 제도 의미 상실했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고도의 수련 과정을 수료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수행하기에도 위험한 마취진료행위를 간호사가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가 마취전문간호사 제도 폐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의 입장이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측은 “마취간호사 제도는 1960년대 마취과 의사 부족과 무자격 마취사의 마취행위 등 이유로 보건복지부령에 의해 도입됐지만 2015년 현재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4,824명에 배출된만큼 마취간호사 제도는 사실상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마취통증의학회가 마취전문간호사 제도가 의미를 잃었다고 판단한 가장 큰 이유는 마취전문간호사 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으로 마취전문간호사 자격을 취득한 간호사는 모두 619명이다. 이중 570명은 2005년 마취전문간호사 국가고시가 시행되기 전 자격을 취득한 이들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마취전문간호사 자격을 취득한 간호사는 49명에 불과하다. 지난 4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마취전문간호사 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김미형 센트럴병원 마취전문간호사는 발제를 통해 “현재 마취전문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간호사는 약 270명”이라고 밝혔다. 4,824명에 달하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입장에서 보면 270명을 위해 의료법까지 개정해 이들의 마취행위를 정당하게 해줄 필요가 있겠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홍성진 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마취액을 직접 주사해 척수마취를 시행하는 행위는 약제의 선택이나 용법, 투약부위, 환자의 체질이나 투약 당시의 신체상태,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능력에 따라 환자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결론적으로 인간의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마취시술을 고도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간호사들이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간호업무에서 벗어나 마취기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마취전문간호사라는 명칭이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면서 “‘마취전문’이란 명칭 때문에 간호사들이 마취시술을 해도 무방하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근 가천의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이 가천의대간호대학원 마취전문간호사 석사과정 수업을 내년부터 거부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간호사보다 못한 의사 마취가 더 문제다”
2014년 3월 5일 저녁 8시. 청주시 ㅇㅇ산부인과에서 마취전문간호사 B씨는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위해 집도의 지시 하에 척추마취를 시행했다. 태아는 출산직후 사망했으나 산모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태아 상황과 관련해 집도의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은 환자와 보호자는 특별한 문제없이 퇴원을 했지만, 6개월 후 산모 측에서 마취전문간호사가 마취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를 이유로 마취전문간호사를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마취전문간호사들은 의사의 지시와 감독 하에 행해진 합법적인 마취행위마저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단될 가능성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 이후 마취행위로 인해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사건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마취전문간호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수도권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마취전문간호사는 “과거에는 마취전문간호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했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간호사 사회에서도 마취전문간호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면서 “마취전문간호사가 되기 위해 일정한 수련과 석사 과정을 거쳐 어렵게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범법자 취급을 당하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마취전문간호사들은 의사면허를 취득한 모든 의사들이 마취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의료법부터 손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계선 대한마취전문간호사협회 회장은 “현행 의료법에서는 마취전문의 뿐 아니라 의사면허를 가진 모든 의사들에게 마취행위가 허용되고 있는데, 마취와 전혀 관계없는 안과 영상의학과 예방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아무런 지도 없이 마취를 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이 더 큰 문제”라면서 “모든 의사들에게 마취에 대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 타당한지부터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마취전문간호사 입장에서 마취전문의가 처방을 한 후 마취를 하면 가장 안전하다”면서 “만약 의사 내부에서 마취행위는 마취전문의만 하는 것으로 합의한다면 수용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마취전문간호사들은 지난 6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동익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등 의사들이 개정안 취지를 오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등 의사들은 개정안에서 마취전문간호사들이 의사 또는 치과 의사의 마취방법, 마취약의 종류와 용량, 마취기계의 조작 등에 관한 구체적 지시ㆍ감독에 따라 마취행위를 할 수 있게 한 신설 조항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은 “법이 현실화되면 마취전문간호사들이 단독으로 마취행위가 가능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 회장은 “마취전문간호사 단독으로 마취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지시와 감독 하에 합법적으로 마취행위를 하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나”면서 “의사 지도하에 마취행위를 하겠다는 데도 함께 하지 않고 의사 단독으로 마취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의사와 간호사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의료 현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익명의 마취전문간호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 고소ㆍ고발이 난무해 환자, 의사, 간호사 모두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태가 초래됐다”고 토로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언제까지 의사와 간호사 눈치만 살필 것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대법원 판결 전 유권해석 등을 통해 마취전문간호사의 마취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 온 복지부가 대법원 판결 이후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최동익 의원실은 “마취전문간호사 제도를 무용지물화 한 복지부의 책임이 크다”면서 “이번 기회에 가정 마취 보건 정신 감염관리 산업 응급 노인 중환자 호스피스 종양 임상 아동 등으로 전문 분야를 나눈 전문간호사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아직까지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익명의 보건의료 관련 NGO단체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마취전문간호사의 마취행위가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무의촌 지역병원 개원가 등에서 마취전문간호사의 마취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이므로 의사와 간호사 입장이 아닌 환자 입장에서 문제해결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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