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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사도세자와 이맹희 회장, 그 평행이론 (1)

입력
2015.09.29 15:04

영화 ‘사도’를 본 게 며칠 전인데도 여전히 여운이 남아 있다. 사도에서는 이해 안 가는 아픔이 없었다. 이 사람도 아플 만하고, 저 사람도 아플 만하더라. 어려서 내 아버지가 보여주셨던 조급함도 이해가 가고, 거기에 대들었던 나도 이해가 가더라. 주변의 2세 기업인 분들도 보고는, 유년시절 혹은 청년시절 자신들을 괴롭게 했던 아버지와의 갈등이 생각나 펑펑 우셨다 하더라.

영화를 보고 한강변을 걸으며 그 여운을 즐기고 있다 보니 누군가가 떠올랐다. 약 200년 후에 태어난 고 이맹희 제일비료 명예회장이었다. 아주 놀랍게도 사도세자와 이맹희 회장의 삶은 여러 면에서 유사했다. 다음 주까지 이들의 삶의 행적이 얼마나 유사했는지를 적어볼까 한다.

영화 ‘사도’의 한 장면. 배우 유아인이 사도세자 역을 맡았다. 쇼박스 제공
영화 ‘사도’의 한 장면. 배우 유아인이 사도세자 역을 맡았다. 쇼박스 제공

1. 이른 대리청정, 이른 권력욕, 이른 실망

영조는 양위를 다섯 번이나 하겠다고 하였다. 양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사도세자는 죄인이 된 것처럼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해야만 했다. 결국 양위가 뜻대로 되지 않자 영조가 타협을 본 것이 대리청정이었다. 그때 사도세자의 나이 15살이었다. 사도세자는 초반 붕당정치를 타파하고, 군대에 대한 왕권을 되찾음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버지인 영조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영조는 붕당정치를 통해 왕이 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붕당정치를 적절히 상황에 따라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군의 문제는 감히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세자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이다. 세종마저도 재위 초임 군대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상왕이 태종에게 상의하여(실은 태종 뜻대로) 일을 처리하곤 하였다.

이맹희 회장은 36살의 나이에 삼성이라는 그룹의 총수가 되었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 사건의 책임을 지고 총수 자리에서 물러섰기 때문이다. 그룹을 책임지게 된 이맹희 회장은 마음이 급했나 보다. 개국공신들과 원로들에게 쓴소리 하는 일들이 잦았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의 측근이었던 임원들을 해고까지 하였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예순도 안 된 나이라는 것을 잊었나 보다.

결국 상왕 이병철 회장이 복귀했다. 이맹희 회장의 직위와 직함은 가을날 낙엽 떨어지듯 아버지말씀 한 마디로 후드드득 떨어졌다. 나가란 소리였다. 이맹희 회장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병철 회장은 회고록에서 ‘맹희에게 그룹을 맡겨보았는데, 6개월도 되지 않아 그룹이 흔들리더라’라며 복귀 이유를 설명하였다. 겨우 6개월. 경영능력을 판단하기에는 많이 짧은 기간이다.

세종대왕이 떠오른다. 22살의 나이에 양위를 받고도 태종이 돌아가실 때까지 늘 몸을 낮추어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지시를 “상왕께 여쭈어보고…”라고 시작하면서도, 자신을 연마하고 중심을 잡았다.

2. 친구와 가무를 좋아하는 성격

영조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조는 외아들이자 세자에게 내려 줄 책을 직접 집필하시며 밤을 지새우시곤 했다. 그런 세자가 공부를 게을리 하고 개 그림이나 그릴 때에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고 영화 속 영조는 읊조렸다.

반면 사도세자는 어렸을 때에는 영특했으나 공부 자체를 그리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 속에도 나왔듯이 일년에 한두 차례 공부 생각이 난다고 세자가 답하여 영조가 “솔직한 것은 좋구나”라며 애써 칭찬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사도세자는 무예, 가무를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외형도 우람하고 기골이 장대했다고 한다. 같은 남자들끼리 “저 형은 진짜 멋있어”라며 치켜세울 타입이었나 보다.

8월 14일 별세한 삼성가(家)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CJ그룹 제공
8월 14일 별세한 삼성가(家)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CJ그룹 제공

이맹희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남자들로부터 인기가 대단했다. 호방한 성격에 남성적인 외모를 가진 데에다가 부잣집 자제이다 보니 남자친구들이 줄줄 따랐다.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던 국수공장집 종업원의 자제들이 전두환, 전경환 형제였다. 이맹희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이들하고도 격의 없이 친하게 어울렸다. 삼성그룹에서 물러났을 때에도 항상 친구들과 함께였다. 이맹희 회장 또한 “진짜 멋있는 형’으로 통했을 것이다.

3. 정신병

사도세자에게서 이상 증세가 처음 나타났을 때가 20대 초반이었다. 혹자는 그게 영조가 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도 하고, 혹자는 유전 때문이라고도 한다(생모의 죽음도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유전적 정신질환이 사춘기 지나 20대 초반에 스트레스를 도화선으로 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는 주장도 유전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모두 설득력 있어 보인다.

사도세자의 증상을 현대의 정신의학 관점에서 보면 간질이었다는 주장도 있고, 조울증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울증이라는 주장에 더 마음이 간다. 그래서 조증 기간에는 공격적으로 사람을 해치거나 성적으로 탐닉하곤 했고, 울증 기간에는 우물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이코패스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자살을 시도했다거나 생모인 영빈 이씨를 측은히 여긴 면들을 보면, 사이코패스는 아닐 듯 하다. 사이코패스는 측은지심과 우울한 감성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이맹희 회장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맹희 회장의 자서전을 보면, 이맹희 회장은 노상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킬까봐 걱정했다 한다. (1부 끝)

변호사

(다음 주에는 아버지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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