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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시대 거스르는 패자부활의 정치

입력
2015.09.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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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판은 언제나 패자부활전

이래선 시대정신 담는 정치 불가능

새 정치 요체는 낡은 인물들의 퇴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왼쪽)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에서 열린 중앙미디어네트워크 50년 기념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왼쪽)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에서 열린 중앙미디어네트워크 50년 기념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익숙하게 봐온 모습이다. 선별, 단합, 배제, 이합집산…. 동조세력 추려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다시 민주당으로 간 노무현 때도, 3당 합당으로 정계 판도를 뒤집은 YS 때도, 이전 통일민주당 분화(分化)도 그랬다. 건국 초기부터 그랬다. 우리 정당변천사를 그리려면 A4 용지로는 턱도 없고 전지(全紙) 한 장쯤은 필요한 이유다.

정당은 정치이념과 정견을 공유한 집단일진대, 우리 정당은 이해집단에 가깝다. 이해 계산의 핵심은 인물이다. 공천을 보장 받거나, 그늘에서 한 자리 꿰찰 가능성이 변수다. 복잡한 정당사도, 여전한 계파정치도 이런 인물정당 구조 탓이다.

지금 야당도 마찬가지다. 원래 큰 선거에 패하면 책임지는 퇴진이 상식이다. 정치선진국에선 거의 정계은퇴다. 우리는 기를 쓰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든다. 세를 유지해야 차기를 한번 더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정치는 언제나 패자부활전이다. 이회창은 세 차례나 대선에 낙선하고도 끈질기게 정치생명을 이어갔다. 따지고 보면 박근혜 대통령도 패자부활 케이스다.

구차한 미련을 보이는 정동영이나, 천정배처럼 경선ㆍ선거패배에 처신논란 등 숱한 굴곡을 겪고도 정치 끈을 놓지 않은 이들까지 합치면 부지기수다. 특수상황에서 대체불가의 지도자이긴 했으나 어쨌든 DJ, YS가 만든 부정적 정치문화의 유산이다. 미국에선 케네디에 패하고 와신상담, 8년 뒤 대통령이 된 닉슨 정도가 드문 패자부활 사례일 것이다.

상습 패자부활전의 가장 큰 폐단은 정치발전 지체다. 세상은 눈 돌아갈 정도로 빨리 변하는데 우리 정치는 매양 그 체제에 그 얼굴이다. 새로운 생각과 체질의 정치인이 도저히 클 수 없는 구조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판을 흔들고 시대를 여는 모습은 언감생심이다.

집권당도 다를 것 없다. 대통령과 주류가 그립을 놓지 않으려 드는 바람에 갈등을 키우고 새 인물의 성장을 막는다. 유승민사태도 그런 것이다. 퇴임 후 안위와 영향력 유지를 위한 것이지만 부질없는 욕심이다. 정두언 말마따나 여당 주류에서 후임이 나온 적도, 퇴임 후 안위를 보장받은 적도 없다.

이른 얘기지만 그래서 차기 대선에선 지금 여론조사에 오르는 인물들을 보고 싶지 않다. 대체로 정치게임에 능하고 생존기술이 탁월한 이들이다. 주변 문제로 벌써 논란에 오르고, 이념분파에 따라 대중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광속(光速)의 시대변화와는 부조화다.

5년마다의 대선은 새로운 인식과 가치, 행동양식을 담는 시대혁신의 그릇이 돼야 한다. 낡은 정치 틀이 시대를 발목 잡거나 심지어 퇴행시키도록 해선 안 된다. 부활한 패자들이 득실대는 지금의 정당 지도부 인물들이 아닌, 젊고 신선한 신진들이 겨루는 판을 보고 싶다. 여권이라면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야권에선 안희정 김부겸 등, 언뜻 떠올려지는 인물들만 해도 여럿이다.

어리고 경험 적다 할 건 아니다. 이들도 이미 적잖은 나이거니와 YS, DJ가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대선 판을 흔들었던 게 40년도 훨씬 전 일이고, 이들이 “역할 끝났으니 낚시나 다니라”는 소릴 들었던 게 요즘으로 치면 젊디젊은 50대다. 클린턴, 블레어, 캐머런… 40대에 국가를 이끈 세계적 지도자들을 꼽자면 한도 없다.

그러니 연공서열식 문화 타파가 급한 곳은 기업ㆍ노동판보다 정치판이다. 지금의 정당 지도자들은 새 물결에 시대를 맡기고 경륜 있는 조언자, 후원자 역할을 자임하는 게 맞다. 이 또한 필요한 일이므로. 이게 우리 국가사회를 훨씬 개혁적이고 역동적이며, 시대정신에 부합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다.

쇄신은 결국 유권자 국민에 달렸다. 다음 총선이 그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여야 지도부의 하나 달라지지 않는 행태들을 보면서 더는 이렇게 우리의 앞날을 방치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고인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거니와, 굳이 길어 담아 돌려본들 방아가 제대로 힘 쓸 리도 없다. 필요한 건 새 물결이다.

주필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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