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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의 매체는 대체] '헬조선'의 정치적 효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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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헬조선’이라는 인터넷 속어를 언론에서 소개하는 것이 흔해졌다. 유행 보급 과정에서 순화되기 전의 당초 용어는 아예 ‘헬조센’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한국사회의 부실한 측면을 모아서 가차 없이 비하하기 위한 용어다. 이전의 삼포세대, 혹은 88만원세대, 많이 거슬러 올라가서 엽전들 같은 유행어도 원래 개인은 고생하는데 희망은 줄어드는 사회의 부실함에 대한 비판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 유구한 흐름 위에 놓여있지만, 이번 ‘헬조선’ 유행은 사람보다는 사람을 그렇게 몰아간 우리 사회를 직접 비하하면서도 성공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회의 부실을 개인의 힘으로는 웬만하면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노력 신화에 빠질 수도 있고, 엉망인 현실에 대한 조롱으로 자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실을 개선할 가능성을 아주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는 대처는 평범하고 명백하게도, 탄탄한 조직화와 제도적 경로들을 충분히 활용한 지속적 운동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쉽고 괴로운 자학이 아니라 굳이 어렵고 괴로운 운동을 선택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 있다. 바로 내 정치적 참여가 효과가 있다는 느낌, 즉 정치적 효능감이다.
효능감을 위해 역사 속 민주화 시민혁명의 쾌거를 되새김질할 수도 있다. 큰 선거에 위기가 닥칠 정도로 여론을 악화시켜주면 누군가조차 카메라 앞에서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려준다는 흔한 일화를 설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효능감을 키워내기 위한 가장 탄탄한 방법이란, 좀 더 평범하다. 내가 세상을 조롱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여 노조에 가입하고 정당원이 되고 단체를 후원하다 보면, 정말로 제도적 개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일상적 경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위해 가장 시급한 지점은 당연히 지역 정치의 민주적 내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혹은 시민들이 사적 밥벌이 너머 공적 참여에 진지하게 나설 여력을 가지는 노동환경 조성도 있다. 나아가 정책 결과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지우는 정당 문화도, 모두 묵직한 사회 진보 과제다. 하지만 확실하게 도울 수 있는 역할은 미디어의 몫이다. 바로 ‘헬조선’이라는 자학적 유행어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다음을 논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지역정치에 관심을 할애하도록 의제를 짜고, 왜 불투명하고 갑갑하게 돌아가는지 분석해줄 수도 있다. 부당노동행위의 현실에 체계적으로 저항하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방법들을 소개할 수도 있다. 지금의 문제적 정책이 어떤 이들의 과오로 만들어진 것인지, 타임라인으로 집요하게 기억을 되짚어주는 것도 좋다. 그래서 지금 개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어떤 부분에 난관이 있기에 어떻게 모두 함께 더 나은 사회적 해결책을 궁리할 것인지, 축적된 지식과 다양한 경험들을 제대로 연결해주는 것 말이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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