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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불을 켜다가… 권력 눈치에 슬며시 감는 눈

입력
2015.09.12 04:40

피붙이 앞에 번번이…

박 대통령 서슬퍼런 엄단 의지

동생 부탁에 관리담당 교체

사정 직제와 기능 헝클어져

끝내 靑문건 유출사건으로 불똥

"시스템 보완" 목소리

제왕적 대통령제선 폐단 지속

靑 비밀주의로 주변 비리 키워

권력 분산과 견제 차단 지름길

‘대통령 친인척 비리 차단은 대통령의 의지 문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전ㆍ현직 청와대 인사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다. 전 정권에서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한 모 행정관은 “‘내 피붙이를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느냐’는 대통령의 인정이 결국 문제를 키우기 마련”이라며 “비위가 잡힌다고 해서 다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털어놓았다.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약해지더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외양상 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여러 개인사적 문제로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동생 박지만 EG회장에 대해 청와대 출입통제 등 엄중한 모습을 보이고, 공개적인 질타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이후 드러난 사실로 보면 위태위태하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당시 박 회장 관리 담당이 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냐는 의문이 일었다. 청와대 직제상 친인척 관리는 민정비서관이 맡게 돼 있다. 그 의문은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재판에 출석한 박 회장의 증언으로 풀렸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업무를 맡게 됐으니 보자’고 연락해와 새로운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게 부담스러워 우리 부부 관리는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이 맡게 해달라고 대통령에게 전화로 부탁했다”는 것이다. 조 비서관은 대선 당시 박 대통령 캠프에서 박 회장 부부 관리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인척 관리와 관련된 청와대 직제와 기능이 헝클어진 배경에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 동생이 연루된 청와대 문건 유출, 친인척 관리담당자와 관리대상자의 부적절한 유착에 따른 결과에 대해 섣부른 호의를 베푼 대통령의 책임이 적지 않은 셈이다. 이명박 정부 때 친인척 관리를 담당한 장다사로 민정1비서관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출신으로 오랫동안 형을 보좌했던 인사라 사실상 관리에 어려움이 컸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어려워하던 친구인 문재인 민정수석을 두 번이나 기용했으나 형 노건평씨 비리를 막지 못했다.

대통령 의지에 맡길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수 백 명이나 되는 친인척을 관리하는 조직이 허술하다고 볼 수만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독신이라 집중 관리 대상은 단출하지만, 친가나 외가 쪽에 기업인이나 정치 관련 인사들이 많아 관리 대상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내에 친인척 관리팀이 있고 경찰, 검찰, 국세청, 감사원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있어 다각도의 정보 수집과 업무를 처리한다. 대통령 친인척과 특수관계인에 대한 인맥지도를 그려 연구할 정도라고도 한다. 지역망이 촘촘한 경찰 정보망을 통해 수시로 동향을 체크하고 사기전과 등 요주의 친인척은 별도 관리도 한다. 그럼에도 구멍이 뚫리는 게 현실이다. 물론 개인 비리는 사전 차단에 한계가 있기는 하다. 또 다른 전 청와대 인사는 “요주의 친인척 인사에게 조심하라는 조언도 하고, 경고도 하지만 말이 먹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네가 먹여 살려줄 거냐’는 식으로 나오기도 했다”며 “범죄 단계까지 가지 않고는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직 확대가 아니라 다른 시스템의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특별감찰관제가 3월 출범했지만 벌써 실효성 문제가 나온다. 장관급인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의 비위행위에 대해 상시 감찰할 수 있다. 독립적 운영이 주요한 설립 목적이지만 친인척이나 측근 비위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부터 문제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더욱이 최대 30명의 조사인력을 둘 수 있으나 수사권이 없는데다 민정비서관실과 감찰 업무가 중복되는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예산만 축내게 될 것”이라며 특별감찰관 역할을 극단적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나 청와대 민정수석에 검찰 출신을 세우는 데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사정기관과의 업무 협조가 비리의 단호한 척결로 이어지기보다 사건축소 쪽으로 흐른 과거 예로 보건대 악습을 끊겠다는 의지에 역행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비밀주의가 친인척 비리, 특히 권력형 비리를 부추긴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몇십년이 지나서야 공개되는 청와대 기록 등 대통령 친인척, 측근 비리 정보를 지금처럼 은밀하게 다루지 말고 좀 더 국민에게 노출하는 방향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보공개가 국민에게도 친인척, 측근 비리와 관련해 신뢰를 줄 수 있고 당사자들에게도 경고 메시지를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고 있는 게 문제라는 시각이다. 민정수석실은 물론 특별감찰관의 구체적 활동과 실상에 대해 아는 국민은 없다. 청와대는 자료 제출 요구도 묵살하며 민정수석실의 업무분장과 인원 등 일반적인 정보의 노출도 꺼려 국회에서 논란이 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1월 청와대 문서유출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 비서실을 상대로 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야당의원들은 “민간인에게는 대외비 문건을 유출하면서 사정기관 파견인력 현황이나 민정수석실 업무분장표 같은 일반적인 자료 요청조차 묵살하고, 공식적인 해명도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무슨 감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자료준비가 늦어졌다” “오늘 아침에 미흡하나마 의원실로 자료를 제출했다”는 식으로 구차한 변명만 했다. 국회 운영위의 한 여당의원은 “당시 회의석상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역대 정부 대통령 가족, 친인척 비리 수사ㆍ처벌 현황 등 몇 가지 자료를 질의시간 전까지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받은 게 없고, 해명도 듣지 못했다”며 황당해했다. 청와대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자세라 쇄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근원적으로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비리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피하기 어려운 폐단이다. 박 대통령이 획기적 조치나 사고의 전환 없이 그 징크스를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들이 적지 않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권력의 분산과 견제기능의 강화가 친인척 비리 폐단을 끊는 지름길”이라며 “검찰도 권력 눈치를 보고 있고 언론도 정보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라 제대로 차단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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