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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난 컴퓨터 속 죽은 벌레, 소프트웨어 '버그'의 유래로

입력
2015.09.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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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작가 조지프 핼러닌의 책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감광수 옮김, 문학동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푸근한 위로를 과학으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있는 대로 보지 않고, 본 대로 인식하지 않고, 인식한 대로 표현하지 않고, 표현된 대로 수용하지 않는 것은, 적어도 늘 그러지는 못하는 까닭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결함 때문이라는 거다. 이른바 인식의 구조적 편향(sysmetic biases)이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살자는 게 저자의 요지는 물론 아니다. 그는 인식 편향의 주된 원인으로 ‘과신’을 든다.

책은 여러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골도프스키의 실수’란 것도 있다. 저명한 피아니스트 보리스 골도프스키는 어느 날 한 제자가 브람스의 곡을 틀리게 연주하자 야단을 쳤는데, 어리둥절해진 제자가 펼쳐 보인 악보를 보고서야 해묵은 인쇄 오류를 알게 됐다는 거다. 그는 실험 삼아 여러 숙련된 연주자들에게도 같은 악보로 연주를 시켜보지만 누구도 그 오류를 알아채지 못한다. 초보자는 알지만 전문가는 모르는, 이른바 ‘골도프스키의 실수’는 악보와 경험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 거였다. 2008년 4월 미항공우주국(NASA)이 예측한 지구 소행성 충돌 계산의 오류를 지적한 것은 13살 소년이었고,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27년 동안이나 몰랐던 전시 실수를 지적한 것은 5학년 학생이었다고 한다.

문장 속 단어 철자의 순서를 뒤섞어 놓아도 맨 처음과 끝 철자만 옳으면 독해에 큰 지장이 없다는 근년의 실험은 인간의 눈이 세부보다 패턴을 과신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2014년 초 한 패션잡지 인터뷰에서 주인공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결혼시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문학과는 별 상관없이 내가 처음 구상했던 구도에 매달린 탓에 저지른 실수였다”고 고백한 일이나, 2013년 말 캘리포니아의 한 대형 쇼핑몰이 실수로 성경에다 ‘fiction(소설)’라벨을 붙여 팔다가 SNS에 사진이 올라가는 바람에 홍역을 치른 일도, 뿌리를 파보면 구조적 편향의 혐의가 드러날지 모른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위안의 십계명처럼 여기는 말로 “버그 없는 프로그램이 바로 버그”라는 게 있다. 프로그램에는 버그가 있게 마련이라는 뜻도 되고, 완벽하다고 생각될 때가 의심할 때라는 의미도 되지만, 수학적ㆍ공학적 완벽함의 신화는 버그의 존재로 완성된다는 자못 철학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1945년 오늘(9월 9일), 말썽을 일으킨 하버드대학의 마크II 컴퓨터 패널에서 죽어 있는 나방을 발견한 뒤부터 소프트웨어 ‘버그(bugㆍ사진)’란 말이 비로소 쓰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더 그럴싸한 이설(異說)들에도 불구하고 저 일화가 회자되는 까닭은 과신에 대한 유쾌한 풍자 같아서일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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