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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오른 산업은행… 대우건설 등 20곳 먼저 판다

입력
2015.09.08 18:13

비금융자회사 118개 매각 대상

대우조선해양·STX중공업 등

실사 거쳐 매각 추진될 가능성

中企 육성·투자금융 업무에 중점

내달 기업구조조정 회사 설립

산은 주도 구조조정 역할 분담

정부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부실 관리 논란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비금융 자회사들을 상당수 매각하고 기업 구조조정업무를 이관하는 등 기존의 역할을 크게 축소할 방침이다. 산업은행의 이 같은 개혁 방안은 이달 실시되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자회사 대거 매각

8일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 역할 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정책금융 역할 강화 방안’을 다음달 중에 발표한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우선 산업은행의 비금융자회사 매각을 검토 중이다. 산은의 비금융자회사는 모두 118개로, 장부가로는 1조9,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는 이 가운데 구조조정에 착수했다가 정상화된 기업은 신속히 매각하고, 중소 및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보유 중인 자회사는 더 성장시킨 뒤 매각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당장 매각이 추진될 수 있는 대상 기업은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20여개사로 추정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와 관련 “산업은행이 대형기업을 지원하다보니 업황이 어려워진 기업의 부실채권이 많아졌다”며 “산은의 비금융 자회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투자목적을 달성한 기업부터 팔아야 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책금융이 공급된 후 정상화된 비금융 자회사는 신속히 매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대기업 중 정상 상태인 대우건설이 우선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산은은 사모펀드(PE)를 통해 대우건설을 간접 보유(지분율 50.75%)하고 있다. 3조원대 부실이 드러난 대우조선해양 역시 이달 말까지 예정된 실사를 거쳐 부실 규모가 확정되면 매각이 추진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국내 대표 방위사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정상화 과정이 진행중인 STX중공업, STX엔진 등도 매각 추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금융 자회사도 매각 대상이다. 산은은 앞서 금융 자회사인 KDB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 산은캐피탈 등 3곳을 팔기로 하고 10월 초 매각공고를 내기로 한 바 있다.

산업은행 역할 개편

자회사 매각과 함께 산업은행의 역할에 대한 대수술도 추진되고 있다. TF는 산업은행이 중견·중소기업 성장 및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미래 산업과 중견기업 지원을 주된 업무로 하고, 대출 등 개인금융이 아닌 투자금융 업무에 집중하는 식으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주도해온 기업구조조정의 경우 시장과 역할 분담하는 방향으로 개편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다음달 중에 주요 은행이 출자하는 형태로 민간 기업구조조정회사를 설립할 방침이다. 부실이 발생한 기업을 기간산업이라는 이유로 산업은행이 대출을 늘리고 결국 자회사로 편입하는 악순환을 막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은이 정책금융기관의 본연의 업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주된 논의 사항”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정부가 산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산은 주도로 정상화됐던 기업이 다시 부실화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자회사 관리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이후 수주한 해양플랜트 일부에서 부실이 발견되며 지난 2분기 3조원대 손실을 올 2분기 실적에 한꺼번에 반영했고, 이 과정에서 산은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또 다른 자회사인 대우건설이 최근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인 것도 이 같은 논란을 가중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산은의 역할을 둘러싼 정체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5년간 민영화를 추진하다 다시 국책은행으로 돌아오는 등 정책의 방향이 혼선을 빚는 과정에서 정체성이 모호한 기관이 됐다는 것이다. 인수합병(M&A) 등 기업금융 분야나 가계여신 등 시중은행들과 중복되는 업무가 발생하고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채권단 내 다른 은행들의 신뢰를 잃는 사례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커지는 정치권 압박

정치권에서도 산업은행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부실 관리 논란은 21일 예정된 국회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될 전망이다. 새누리당 이운룡 의원은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 발생 원인은 산업은행이 시장 기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은 이명박, 박근혜정부 들어 신규 임명된 사외이사 18명 중 12명이 정치인 내지는 공무원 출신이라며 대우조선해양 부실의 중심에는 대규모 ‘낙하산’ 사외이사 집단이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산업은행이 단기적으로는 기업구조조정 시장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해야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벤처펀드와 중소기업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유능한 전문 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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